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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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각인된 이미지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게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생각해 보면, 평범한 일반사람인 나조차도 40평생을 살아오면서 굳게 믿어왔던 신념이나 생각들이 뒤늦게 흔들리는 경우가 숱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회적인 위치가 어느 정도 존경받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하나하나 행동이나 발언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단 생각을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해는 별개로 2009년도에 있었던 황석영의 '변절논란'을 불러일으킨 일련의 발언은 당시 상당한 충격을 나에게 안겼다. 이어지는 김지하시인의 황석영 지지발언은 믿던 애인에게 결별선언을 듣는 것만큼이나 배신감과 함께 허탈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김지하시인이나 황석영작가나 그들의 족적 하나하나를 세세히 추적하며 그들을 우러러봤던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들에게 짐지워진 이미지, 그 이미지를 넘어서서 그들을 깊게 생각해 본 기억이 없었으니, 이내 세태를 탓하며 쉽게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된 40대 중년이었던 것이다.

<강남몽>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잠시 고민했었다. 만나봐야 할까?

망설임과 머뭇거림,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혹시, 하고 기대하는 마음은 끝내 이 책을 손에 들게 했다.

 

<강남몽>에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지난 격동의 시절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인식해왔던 강남형성사와 일부 부자들의 부축적의  어두운 과정들이 1995년 6월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소재로 하여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5명의 군상들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그려져 나타난다.

원래 10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단행본으로 압축을 시켜서인지 소설적인 재미는 부족한 느낌이다. 인물들에 대한 심층적인 묘사가 약하고 강남의 건설과정에 필연적으로 맺어지는 개인의 역사를 나열하는 식으로 그쳐서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역시, 라는 결론을 짓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황석영의 책은 <장길산>, <오래된 정원>, <모랫말 아이들>,<삼포가는 길>,<무기의 그늘>등 다수의 책을 접해봤으나, 그 중에서 <장길산>에서 느꼈던 용두사미같은 결말을 <강남몽>의 결말에서도 본다.

백화점 직원인 임정아의 생존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희망을 약하게나마 보여주고자 한 것 같지만, 그 결말은 작금의 현실을 돌아 봤을 때, 안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의 계획대로 대하소설로 구성했다면 인물들의 구체적인 묘사와 다양한 사건들의 설득력있는 구성과  전개로 좀 더 살아 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백화점 직원인 임정아와 같이 붕괴된 건물더미에 깔렸던 박선녀는 국밥집 딸이었던 그녀가 모델계로 입문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흔히 텐프로로 칭해지는 요정계에 발이 디디기까지의 과정, 룸살롱과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 맺어진 폭력배들과의 인연 , 그리고 삼풍백화점 회장인 김진의 첩이 되기까지의 내용을 소설의 시작으로 하여 딸같은 박선녀를 후처로 맞은 김진이 어떠한 경위로 하여 강남에 건설업을 통해 거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밀정, 미군정청 산하 요원, 4.3사태, 여순항쟁, 5.16쿠데타 등 역사적인 사건의 진행과 함께 씨줄과 날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졸부의 탄생을 보여주는 부동산업자 심남수, 호남출신 주먹패 홍양태와 강은촌등을 각 장의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은 전개된다.강남몽의 주인공들의 대척점에는 임정아의 부모인 임판수와 김점순의 신산한 삶의 이력을 그려냄으로써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이면에 가려진 민초들의 그늘과 상처를 함께 보여준다. 

<강남몽>은 저자의 말에 의하면 '80%는 사실 그대로이며, 20%가 인물의 일상생활을 형상화한것이 허구'라고 하였는데, 등장인물의 이름과 발자취를 조합해 보면 실제의 인물이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신문기사로만 대했던 그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소설로 접하는 재미가 은근히 흥미롭다. 내 짐작이 맞다면 이철희, 장영자, 조양은, 김태촌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역사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현대사의 한 축을 한 권의 소설로 압축해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의미를 찾고 싶다.

 

흔히, 황석영의 문학세계는 '주변부 소외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산업화 사회의 모순과 상처를 준엄히 비판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성찰의 끈을 놓지 않았다'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가 잘 드러나는 새로운 그의 작품을 꼭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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