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열심히 읽었던 서영은님의 소식을 들은 지가 가뭇하다. 아마도 김동리선생 사후 유산문제로 자녀들과의 소송건이 여성잡지를 바쁘게 했던 그 기억 이후로부터 단절된 채 잊고 있었던 거 같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이 언젠가부터 주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가 뭐야? 지명이야? 커피이름이야?

스페인의 한 지방이름이란다. 프랑스 남부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이르는 길이 순례자들의 길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 예수의 제자 야곱의 흔적이 발견되고부터다.

문학판에서도 이미 산티아고와 관련된 책은 다양한 저자와 내요으로 여러 권 출간이 된 걸로 알고 있다.

여행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산티아고에 대한 빈번한 주변의 관심은 언젠가는 산티아고를 만나겠지, 막연한 마음으로 이어졌는데..., 그 산티아고를 서영은님이 다녀오셨단다. 그 동안의 오랜 침묵을 깨고. 더군다나 유언장을 남긴 채.

지금 젊은치들은 가수 서영은은 알아도 원로 소설가 서영은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영은의 작품을 아끼는 삼십 후반 이후의 여성독자에게는 아주 깊게 각인되어 있는 작가이다. 

김동리의 영향도 무시못하겠지만, 서영은님의 소설에는 구도자의 고뇌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 걸로 기억한다. 하물며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도 구도자의 모습으로 착각할 정도로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게 그려지고는 했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사랑을 구도의 길로 승화하지 않았나 나는 내심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만큼 외로웠으리라. 보편의 시각에서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이 그녀로 하여금 길로 나서게 했으리라. 섣부른 짐작을 했다.

이십대 시절,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과 애린의 상처로 고통받던 시절, 단골서점의 불이 꺼질 때까지 내 손에 들려있었던 것은 모두 다 그녀의 책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또 치유할 수 있었다. 해서 난 나의 이십대를 기억할 때, 늘 서영은님을 같이 떠올리곤 한다.

이 책을 만난 반가움을 얘기하다 보니 내 얘기가 더 길어졌다.

이 책은 그러니까 기존의 그녀의 책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련의 여행기와도 다르다. 바로 세상 것을 모두 버린 채 길을 나선 순례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에서 저자는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길,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그 길을 걷기, 걷는 자에게 보여주는 화살표, 저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영성을 만나는 길이 되어주기까지의 그 여정에 대해서 시종일관 차분하고 진지하게 저자만의 깊이있는 언어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모두가 사실이다. 더하거나 보탠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썼다고 말한다.

3부로 구성되어, 1부에서는 길이 부르기 전에 혼돈의 시간에 대해서 쓰고 있고, 2부에서는 길 위에서의 모든 체험과 느낌, 그리고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3부에서는 하나님의 영성을 만난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것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노란화살표가 그려진 돌, 나무, 숲, 나무문, 기둥, 담 ....저자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 보면 절로 차분해지면서 그 길에 선 순례자의 묵묵한 발걸음이 떠오르게 된다. 책의 3분의 1쯤 지났나..갑자기 나타난 저자의 모습이 화들짝 반갑다..사람의 모습이 산티아고 길의 한 풍경처럼 또 그렇게 자연스러워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저자의 건강하고 담백한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생각보다 얇지 않은 책,  내용의 차분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몰입도는 뛰어나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무거운 몸으로 눈을 뜨는 것,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하는 것, 빗속에서도 꿋꿋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 산티아고 여정에서는 알레르겔(숙소)에 도착할 때마다 가까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이 모든 것을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나는 같이 그 자리, 그 공간에 저자와 함께 한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비가 내렸다. 뉴스에서는 모처럼의 긴 휴일이라서 나들이 인파가 많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노란화살표와 함께 한 시간은 내게는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거의 그녀의 육성과도 가까운 개인의 기록에 다름이 아니기에, 보통의 여행서처럼 다채로운 사진이나, 소소한 에피소드를 읽는 즐거움, 혹은 감성적인 사유를 통해 얻어지는 가벼우면서도 반짝거리는 재미를 기대하지는 마시라.

그러나, 그녀를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있는 나와 같은 독자들은 꽤 반가운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나는 만족한다. 아, 천주교인들에게는 이 여정이 좀더 의미있게 다가가줄 것도 같다. 기독교인인 저자가 걷는 내내 지팡이기도를 드리는 것, 도착한 곳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사뭇 은혜롭다. 산티아고 여행을 꿈꾸는 내 친구 클라우디아에게는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산티아고가 말해주는 노란 화살표를 그 시작으로 하여 신께서 그녀에게 준 사명의 길이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앞으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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