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탁한 듯 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음률이 느껴지는 제목은 그러나 첫 눈에 썩 들어오지는 않았다.

발음이 조금 서투른 <티타티타>는 자매처럼 성장한 두 여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장통을 이겨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성장소설은 여전히 두터운 독자층을 갖고 있는 장르의 하나다.

꾸준히 성장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직도 다 성장하지 못한 자기 내면의 표현이자 더 성장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삶의 욕구에서 오는 것일게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실행한다. 이 둘의 순서는  때때로 교차되기도 하고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장해가고 어쩌면 다 성장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자아의 성장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것의 다름 아닐까?

어린 시절, 피아노 치는 친구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장미넝쿨이 늘어지는 높다란 담장이 있는 집에서 사는 아이들만 피아노를 치는 줄 알았다.

해서 난 <티타티타>가 드라마에서 연탄곡으로 자주 나오곤 하던 '젓가락 행진곡'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티타티타>에는 다양한 피아노 소곡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 곡들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나 상황을 은유하는 도구로 이용되곤 하는데, 정작 피아노를 잘 모르는 나도 귓가에 피아노의 맑은 선율이 들려 오는 듯한 착각이 일 만큼 저자의 문체는 깔끔하고 투명했다.

'우리'가 삶의 주인이었던 어린 시절 소연과 미유는 철강회사 비서인 엄마와 공무원인 엄마로 인해 같은 베이비시터에게서 자매처럼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장난감으로 놀며 마치 쌍둥이처럼 성장한다. 그녀들은 그래서 똑같은 유년을 공유했고, 이러한 밀착은 상대의 키스상대를 나의 상대로 혼동하기까지 한다.

우리였던 그녀들이 '나'와 '너'로 갈리는 지점은 어디부터였을까?

육신의 몸이 다 성장한 소연과 미유는 교사와 스튜어디스, 쇼핑호스트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여전히 그들은 피아노를 통해서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한다. 소연과 미유의 관계는 피상적으로는 미유로 인해서 균열이 생기지만, 서로의 유년을 깊이 이해하는 소연의 소통방식은 애틋했던 유년의 기억을 불러옴으로써 자신의 상처와 화해하고 미유가 떠난 빈 자리를 수긍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진다.

이 이해의 이후에 찾아오는 시간속에서 훌쩍 성장해 버린 소연과 미유가 마주할 것임을 독자는 비록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삶이 그러하니까..방식은 달랐지만 서로를 깊이 사랑한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은.

 

비단 소연과 미유만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인물들, 그들 또한 다 성장하지 못한 어리숙한 어린아이를 내면에 하나씩은 갖고 있는 사람들.

요지부동인 결핍들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소연과 미유의 두 엄마, 그리고 연희 이모, 은유언니..지환이...윤진이...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을 견디고 있다.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든 비록 조금 더디더라도 성장시키고 있다.

 

소연의 엄마는 외다리 아빠가 싫어 미혼모가 되어 소연을 키우지만, 엄마라기 보다는 소연에게는 노처년 큰언니같은 모습이다. 미유엄마는 남편을 백전무라 부르면서 그의 허위를 비난하지만, 사모님의 자리를 놓치 못한 채 사랑받지 못한 삶을 원망하며 산다. 소연의 이모인 연희이모는 자신의 사랑도 잡지 못한 채 언니와 소연의 아픔만을 위로하다가 쉰이 넘어서야 타인의 시선만을 신경쓴 채 오롯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본인의 삶을 후회한다.

한편, 미유의 언니 은유는 아빠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단 한번도 아빠를 만족시키지 못하다가 훈련된 시선에 걸맞는 독일의 삶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 본인의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인생을 쿨하게 산다는 것, 오래 더 사랑한다는 것,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방법, 인간에 대한 예의, 관계에 대한 끊이지 않는 허기, 스스로를 위로하기....우리가 살아오면서 생의 모퉁이마다 천착해 봤을 법한 물음들.

그 물음들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는 요새 유행하는 말로 시크하게 말해준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답은 아니다. 익히 알아온 사실을, 저자에 의해 다시 새롭게 쓰여졌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결핍과 고통의 우물만을 들여본다면 결코 그 우물에서 헤어날 수는 없다.

혹여 어줍잖게도 타인의 삶을 연민하는가? 저자는 타인의 삶을 연민하지 말고 그 대신에 그들의 삶을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유난히도 감정이입이 되는 캐릭터가 있기 마련.

나는 미유가 되기도 했다가 소연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속절없이 소연의 애인을 가로챈 미유가 이해되기도 했지만, 지환을 보냄과 동시에 사랑과 우정을 잃어버린 소연의 목덜미가 너무도 뼈저리게 가슴을 후벼파서 한동안 먹먹했다.

 

성장소설이 갖는 매력은 그 것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동질의 추억과 회한과 희망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매뉴얼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열네 살에 예상되는 시련과 성장통, 그것의 존재 이유와 대처 방안,

또 열다섯 살, 열여섯 살, 그런 식으로 말이다.

누구도 월반할 수 없는 통과의례임을 알려주는 매뉴얼.

 

책을 읽는 낸 익숙한 생각들을 만났다. 회고의 취미가 각별한 나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시 제목에 시선이 간다. 왜 '젓가락 행진곡' 이었을까?

두 개의 젓가락은 한 개로는 원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두 개가 있어야지만 도구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친구의 존재가 그런 것이지 않을까? 친구란, 또 다른 나의 자아, 라는 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든, 아픈 영향이든, 그 무언가를 끼치며 서로를 성장시켜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친구가 아닐까?

 

소설의 시작과 소설의 마무리를 <티타티타>로 수미쌍관법식 전개를 펼친 저자의 의도를 나는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해석해 본다. 프리모 소연과 세컨다 미유는 그들의 미래에도  젓가락같은 우정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더 끈끈한 자매애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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