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뒤 - 러시아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박종소.박현섭 엮어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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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창비에서 아주 욕심나는 전집이 나왔다. 일명 [창비세계문학]전집이라고.

근현대 외국소설 100년의 걸작을 모은 이번 창비세계문학은 9개 나라(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폴란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9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총 102명 작가의 1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9권의 책등만 보아도 마음이 절로 설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러시아 문학이다.

하얀 설원, 세찬 바람이 부는 깊고 검은 북구의 나라의 작가들이 전해줄 생생한 이야기가 책을 받아든 그 순간부터 내게 전해지는 듯하다.

이번의 전집에서 특이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표방하고 있는 영어 중심의 일방적인 표기법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각 언어의 독자적인 맛을 살리고자 수년전부터 외래어의 가장 원어 발음에 가까운 한글표기방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똘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더해졌기에 이번 단편집을 대하면서 러시아문학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러시아 작가라고 하면, 똘스토이 외에도 뿌슈낀, 도스또옙스끼, 고리끼 등이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작가들이다. 이 외에도 (도스또옙스끼는 이 책에서 빠졌다) 소개글에 의하면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이 엄선한 문화사, 사회사의 맥락 속에 살아 움직이는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해놓고 있다.

즉, 러시아문학은 똘스토이와 도스또옙스끼가 만들어낸 장편소설의 거대한 산맥 사이로 단편소설의 또다른 매혹적인 세계가 자리잡고 있으며, 19세기 전반에 뿌슈낀과 고골에 의해서 구축된 러시아 단편소설의 독특한 전통은 19세기말, 체호프에 이르러 범세계적 보편성으로 활짝 꽃피웠고, 이는 다시 바벨, 부닌, 쁠라또노프 등의 작품들 속에서 현대적인 양식으로 진화하면서 세계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고 한다.

[무도회가 끝난 뒤]에는 이런 18~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 빠질 수 없는 대표작가 11명의 작품 13편을 실어놓고 있다.

체호프의 <슬픔>은 마부 이오나의 아들죽음을 소재로 한 것으로 훗날 현진건의 단편 <운수 좋은 날>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여지는 작품이며, <입맞춤>은 예기치 못한 '입맞춤'사건을 계기로 발생하는 주인공 랴보비치 장교의 기쁨과 번뇌에 시달리는 마음속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절로 웃게 되는 작품이다. 러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반 부닌의 <가벼운 숨결>과 <일사병>은 다른 단편의 풍경과는 다른 작품으로 작가의 풍성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일하게 여성작가인 나제쥬다 떼피의 <시간>은 한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두 모임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세월의 무상함을 풍자한 작품으로 여성적인 섬세한 시각이 돋보였다. 

막심 고리끼의 <스물여섯과 하나>는 밑바닥 사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그 내부에서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게 하는 단편이다.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그래서 여러번 읽게 되었다) 니꼴라이 고골의 <외투>이다.

고골의 중편 <외투>는 뻬쩨르부르그 시절에 연작시리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상황묘사가 인상적이다.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 이 중편은 외투의 주인인 아까끼의 매우 안쓰러우면서도 희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이다.

이 단편집의 제목인 <무도회가 끝난 뒤>는 똘스또이가 말년에 집필한 작품으로, 인생의 행로가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사건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하는 주인공은 무도회참석 전후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단편에는 사랑과 육체, 폭력과 무저항주의, 사치스런 귀족의 삶과 검소한 민중의 삶 등, 똘스또이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풍부하게 담겨 형상화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각각의 단편은 첫머리에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작품에 대한 소개가 있은 후에, 끝 부분에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을 '더 읽을 거리'라는 팁으로 소개해놓고 있다. 아주 상세하고도 친절하게(연도와 출판사까지)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이국의 작가들의 단편들속에서 다양하면서도 낯선 독서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창비세계문학]. 문학을 좋아하는 자라면 누구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전집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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