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표지의 비비드 빛깔의 달콤한 일러스트그림과 제목에서 풍겨오는 느낌이 판타스틱하다.

동양전설에 나오는 보름달 속에 사는 토끼가 연상되는 저 멀리 살고 있는,  달빛을 모아 별을 닦고 있는 토끼 한 마리.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받아든 책 표지에 적혀 있던 이 문구 한 마디는 순간 가슴을 뛰게 하게 설레게 한다.

지난 연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별 기대없이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본격적으로 책 속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연말이 주는 쓸쓸함과 어수선함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달콤하고도 따뜻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담겨 있었다.

 

충청도 대천 앞바다에는 외연도라는 작은 섬이 하나 떠 있다.

그리고 이 섬에는 빨간 동백꽃을 피우는 동백숲이 있는데, 그 숲에는 동백나무 외에도 사랑나무, 라고 명명되는 아주 독특한 나무 한 그루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각기 두 그루의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서로의 가지에 맞닿았다가 끝내는 붙어버린 채, 한 몸이 되어버려서 사랑나무, 라고 불리게 된 사연이란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이 나뭇가지 아래로 손을 꼭 잡고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외연도의 사랑나무 전설에 버금가는 또 다른 사랑에 관한 전설이 담겨 있다.

그것은 독일의 발트해에서 멀지 않은 곳, 한 호수의 떡갈나무와 관련한 사랑나무의 전설과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된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별을 닦는 토끼의 전설이 바로 그 것이다.

첫번째 사랑나무 전설에 감명을 받은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명인 도시히코가 방송극을 창작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두번째 토끼전설과 관련된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토끼전설을 살펴보면, 부츠에 작업복 차림을 한 키가 15센티 정도 인 토끼는 밤하늘의 별을 닦는 일을 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밤하늘의 별을 고르면 이 토끼가 별을 닦아주게 되는데, 그 때 별이 반짝이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밤하늘의 별을 닦게 하는 것은 평생에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동화같은 전설이 두 개씩이나 등장한 것을 볼 때,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중학생인 쇼타와 케이의 풋풋하고도 조심스러운 사랑의 과정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전개를 볼 때 , 성장소설의 범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꼭 성장기에만 우리가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살아 있는 동안 늘 꿈꾸고 갈구하는 것은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케이의 부모인 사스케와 구미의 사랑, 팥죽집 할머니의 기다리는 사랑, 암젤 커피전문점 선대 마스터의 희생적인 사랑, 이루지 못한 도시히코, 요코의 사랑. 사랑 속에 숨겨진 삶의 다양한 파편들.




생애 한번뿐인 별을 닦는 사랑이 꼭 이루어져야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히코나 요코처럼 별닦이 토기에게 부탁해도 별이 반짝이지 않는, 보답이 돌아오지 않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니까. 게다가 별을 닦아주면 그런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묶어 둘 수 있거든. 외롭고 쓸쓸해질 때마다 이따금 그걸 쓰다듬어 주면 돼."(242p)




그 어떤 사랑얘기를 읽어도 그들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고, 늘 내 얘기로 마음이 쏠리곤 한다.

책을 덮고 난 후, 나의 지나온 삶 속에 과연 별닦이 토끼는 등장했었는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이가 드니 자꾸만 기억은 희미해지고, 감성도 무뎌진다.

토끼를 기억해내느니, 남은 생에는 발트 해 근방의 사랑나무 전설을 더 기억해야겠다. . 만나는 인연들속에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아야겠다.더 많은 사랑을 기꺼이 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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