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독특한 제목의 인상적인 표지사진이 시선을 끈다.

해질녘의 분위기를 풍기는 듯한 엷은 노란색 바탕에 짧은 민소매원피스 차림의 경쾌한 여성...그리고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두 개의 여행가방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참 색다르게 다가온다.

박수영,,젊은 느낌을 주는 이 이름의 작가를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그녀에 대한 짧은 소회를 담은 평론가 방민호의 글이 없었다면 그녀에 대한 자료를 찾아봐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름에서 오는 느낌과는 달리 이미 마흔 중반의 여성이었고, 글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지식욕과 감성은 그녀의 나이를 잊게 했다. 그리고 난 참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왜 이제서야 그녀의 글을 알게 되었는지 아쉬울 만큼..

그녀는 이미 멋진 소설을 두 편이나 발표한 소설가였다. 그녀의 소설이라니..곧 그녀의 책을 만나봐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보며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낀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것...그녀의 엄마가 그녀의 삶에 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받은 느낌이 또한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질적인 사회에 무방비하게 자신을 던져놓고 고독한 이방인으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선택한 나라가 바로 북구 백야의 나라 스웨덴이다. 영어로 수업이 가능하고, 교육비가 무료인 점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가난한 그녀에게는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했던 한 이유다.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청춘들이 불타는 학구열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으로 유학을 감행하는 것이 어디 한 두명이던가..그런데, 저자는 나이에서 여타의 청춘들과는 좀 다르다. 그녀의 나이는 우리나라의 통상적인 개념으로는 쉽지 않은 나이인 40대 초반의 나이였던 것이다. 나는 안다. 내 나이가 저자가 떠남을 선택했던 바로 그 나이니까. 방황보다는 안락을, 낯선 곳이 주는 설렘보다는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을,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한 화려한 덧칠이 더 쉽고 잘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그녀가 너무도 부럽고 또 부러웠다.

그러하니, 그 이후에 전개되는 스웨덴의 웁살대학교에서의 일어나는 그녀와 관계되는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얼마나 그립게, 아름답게, 꿈처럼 다가왔겠는가.   

저자는 2006년에서 2008년까지 2년 6개월 동안의 스웨덴 체류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 함께 한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한 것들을 매우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대학원에서 함께 역사를 공부하는 다양한 국적의 보헤미안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터키, 미국, 스웨덴, 한국에서 온 생김새, 문화, 언어, 성장배경, 등이 모두 다른 일곱 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이야기, 향기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 안에서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더 나아가 고착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좋은 삶의 보편적인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지속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은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중소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다시한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해준다. 그녀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교차되는 지점에서는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운 기분이 든다.

 

이 책은 보통의 여행서와는 많이 다르다. 한편의 소설같기도, 그런가 하면 에세이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칼럼이나 내면의 일기같은 글들도 보인다. 다양한 음색으로 속삭이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풍경처럼 매혹적이었다.

이 책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기억>을 삼일이라는 시간에 걸쳐서 띄엄띄엄 읽었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하는 시간 내내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그 눈은 올 겨울 우리 도시에 내린 첫눈으로서 5일째 쉬지 않고 내리던 눈이었다. 덕분에 띄엄띄엄 읽은 책의 내용은 결코 그 느낌이 단절되지 않은 채 충만한 느낌으로 탐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며 스톡홀름의 이곳 저곳을 들여다보던 시간은 책에서 주는 느낌과 일치하는, 이 곳이 아닌 깊은 북구의 판타지스러운 환상의 공간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해주는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주는 이미지를 환상의 공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21세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적어도 꿈으로밖에는 만날 수 없는 공간이기에 판타지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경찰과 국가관리를 동원하여 으스대는 국가가 있고, 번쩍이는 경찰 배지를 과시하며 죄없는 국민들도 '움찔'하게 만드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가능하면 허식과 권위를 버리고 헤게모니가 드러나지 않게 절제하는 국가도 있다. 스웨덴은 바로 가장 후자의 국가다. 국민을 겸허하게 대하는 나라.-328p

지난 1세기 동안 '평등'을 국가 철학으로 해온 사회로서 곳곳에 관계의 동등함이 배어 있는 나라 스웨덴은 박수영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만나봤던 스웨덴 관련 책(노벨과 교육의 나라 스웨덴/박두영지음/북콘서트)에서도 눈물이 나올만큼 부러워했던 교육의 평등, 성의 평등의 나라였던 것이다.

최근에 들었던 뉴스에서는 스웨덴의 장점을 하나 더 보태주는 내용이 있었다. 계급의 탄력성이 유연하여 계급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의 평등이 가능한 나라이기에 이것 또한 가능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갈수록 부모의 부와 교육의 정도가 자녀의 계급을 규정짓는 이른바 계급의 고착화가 심화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암울한 뉴스는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기억>을 가방안에 담고서 북구의 푸르스름하게 피어나는 나라 스웨덴을 꼭 한번은 여행하고 싶은 소망을 가슴에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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