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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탐닉 - 북촌 10년 지킴이 옥선희가 깐깐하게 쓴 북촌 이야기
옥선희 지음 / 푸르메 / 2009년 11월
평점 :
북촌은 언젠가부터 내 의식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북촌을 향한 옛 것에 대한 탐미적인 시선을 가지고 된 것은 아마도 박완서 소설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이 기억도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그려지던 북촌의 단아하고도 은근한 멋을 풍겨주던 지명들.
그 모두를 나를 박완서의 소설에서 접했다고 여기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의 주는 느낌처럼 편안하면서도 품격있는 그런 느낌이 북촌이라는 곳에 있지 않을까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북촌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데에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화성이 있는 수원에 살았던 덕분(307p)'이라고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나 또한, 어쩌면 기와지붕아래 살았던 시골생활과 중학교 3년을 보냈던 전주의 교동, 전동 한옥마을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집에서 한옥마을에 위치한 성심여학교까지 30여 분 동안 걸었던 그 길이 바로 한옥마을의 골목 골목이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 끝에 과연 길이 있을까 싶은 정도로 좁고도 구석구석 다른 표정으로 놓여 있던 길들은 언제나 새로운 길로 통했었고, 그 새로운 길 또한 언젠가 본 듯한 그런 편안한 모습으로 결코 질리지 않는 매력으로 나의 등하굣길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비록, 시대의 흐름탓으로 별수없이 콘크리트 도시 중앙의 높다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마당 깊은 한옥에서 살고 싶은 욕망은 기회가 되면 늘 고개를 내밀곤 한다.
이런 기억들은 신문이나 각종 잡지에 나오는 북촌 관련 기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고, 요즘 들어 부쩍 북촌 관련 책이 여러 권 출판되기에 궁금하던 차, 그 중에서도 북촌에서 10년 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담아 낸 저자의 <북촌 탐닉>으로 나 또한, 북촌 탐험에 나서게 된 것이다.
고풍스러운 한옥의 정취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의 호젓함, 고아한 담장의 무늬, 북촌이 그려내는 풍경은 일부 나의 기억속의 전주 한옥마을의 풍경과 많이 흡사했다.
물론, 규모면에서나 역사적으로도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니 이 둘을 단순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결코 낯설지 않은 북촌의 모습은 한번도 발 디뎌보지 못한 곳이지만, 내 유전인자에 박혀 있는 주거기호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꿈속에서라도 살아본 듯 매우 편안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북촌 탐닉>에서는 저자도 서문에서 말했지만, 정보 위주의 글도 있고, 자잘한 일상의 모습을 담은 감상문도 보인다. 그 안에는 북촌의 모든 것을 깊은 애정을 갖고 누리는 저자의 행복에 겨워하는 일상이 읽는 이로 하여금 꼭 한번 북촌에서의 삶을 꿈꾸게 하는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힘이 있었다. 그 중에서 외국인을 위한 홈스테이 경험을 담은 글들은 북촌에 대한 새로운 정보이기도 했는데, 잠시 내가 외국인이었다면, 하는 말도 안되는 소망을 품어보기도 했다.(오늘 아침 서울의 지인이 곧 북촌으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곧 초대를 하겠다는 말이 참 많이도 반가왔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부에서는 북촌의 역사적인 형성 배경과 기본적인 소개, 그리고 저자가 즐겨 찾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와 감상을 삶과 엮어내 풀어놓고 있으며, 2부에서는 북촌의 길들을 따라가보는(창덕궁길, 계동길, 재동길, 별궁길, 감고당길, 화개길, 사간동길, 삼청동길, 북촌길 등) 북촌 기행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마디로 여행안내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데, 약도까지 세세하게 첨부해놓고 있다. 재작년에 모네전을 보기 위하여 상경했다가 마침 현대갤러리에서 개인적인 인연이 닿은 재독화가 노은님전을 보러갔는데, 그때 잠시 들렀었던 두가헌 레스토랑이 소개되어 있어 눈이 번쩍 띄였다. 동안 북촌, 북촌 노래를 불렀는데, 내가 다녀온 곳이 북촌이었다니...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3부에서는 저자가 걸어서 다니기를 좋아하는 북촌 주변의 몇몇 곳을 소개해 놓고 있다.
| 영화를 잘, 많이 보려면 튼튼해야 한다. 스크린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나와야 하므로 많이 먹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 요가 수업에 빠지 않는 것도, 걷기 모임에 나가는 것도 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335P) |
북촌에서 사는 주민답게 영화 한 편도 뼈대있게 보는 저자는 평소에 영화를 보기 위해서 건강관리를 한다는 말에 솔직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인가에 몰입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늙으면 다 그래, 하며 쉽게 포기하고 방구석에서 시간보내기 일쑤인데, 이렇게 관리하는 저자의 모습이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내 삶을 어떻게 가꾸어 가는가는 전적으로 나의 사고에 지배를 받는다.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성실히 즐기는 삶의 자세, 또한 이 책에서 저자에게 배운 팁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15p의 이 책의 본문 첫장에 <매천야록>의 저자 이름을 황헌이라고 잘못 표기한 점이다. 그 옆에 한자는 황현이라고 제대로 쓰여 있는데, 한글은 황헌,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참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