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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최근에 최영미와 관련된 책을 두 권이나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그녀의 여행산문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청춘을 수놓았던 세계의 명시 모음집이었다.
두권의 책과 만남으로써 나는 이전과는 작가에 대한 이전과는 좀 다른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실 개인 최영미를 잘 모른다.
당시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녀의 처녀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마침 서른 즈음의 우리에게는 필수독서목록에 해당되는 거여서 만났을 뿐이고, 당시 그녀를 평하던 '화려한 학벌의 미모의 소유자인 저자의 도발적인 표현',이라는 그녀의 시어들에 신선함을 느꼈었고, 일면 그 표현에 공감도 하면서 서서히 잊혀졌었다.
혹여나 한번씩 그녀의 이름이 취미동아리 언저리에서 거론이 되기라도 할라치면 그녀의 시집은 딱 한권 읽어본 것에 불과한데도 대충은 그녀를 아는 듯한 자세를 취하곤 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그녀의 책<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를 방금 다 읽어버렸다.
사실 그녀에게 갖고 있던 나의 느낌과는 별개로 이 책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소소한 그녀의 일상과 자신의 삶에 대한 고요한 성찰, 다짐,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등..흔히, 그녀에게 짐작되는 생각의 단상들이 앞, 뒤 없이 실려 있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검색을 해 보니, 같은 제목으로 이미 2000년에 한번 출간이 된 적이 있는 책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저자의 말을 빌어보면, 1부에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지면에 기고한 칼럼과 수필을 모았고, 2부에는 2000년에 출간된 동제목의 책에서 생활의 생활의 냄새가 진한 글들을 따로 뽑아 묶었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와도 같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기분이라니...
참, 그녀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강하다는 생각도 같이..
강한 것이 아름다운지,,,아름다운 것이 강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나도 강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그녀의 진솔한 글들..
도도하고 차갑게만 보였던 그녀가 이웃집 언니처럼 참 편안하고 정답게 느껴진다.
한번씩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책꽂이를 정리하게 되고, 그러다가 구석진 곳에 꽂혀 있던 일기장도 들춰보게 된다. 성실히 꾸준하게 쓰지 못하고, 내 일신상의 큰 변화가 있다던가, 가슴이 여러 감정들로 소용돌이칠 때, 일기를 써왔었다. 일기를 쓰면서 가만히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렸던 기억들..
때로는 일기장 속의 내가 매우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아니, 이 일기를 내가 썼단 말이야?
그만큼 일기장에는 평소의 나는 결코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내 무의식속의 극한의 울림만을 기록해 두었으니..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내가 옛날에 헛되이 쏘아올렸던 마음의 불꽃들을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니었던 열망들에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고, 난 돌아섰다. 안녕. 무모했던 날들이여. 안녕. 230p
그녀 나이 39세에 썼던 글을 옮겨 본다.
나도 이런 마음을 39세쯤에는 가져봤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눈길이 자꾸만 머문다.
마흔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헛된 마음의 불꽃을 피워올리고 있으니..
그녀의 글을 만나서 올 연말이 참 차분하게 정리될 거 같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참 좋고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