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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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얀 카라 빳빳하게 다려서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했던, 하냥 만물의 움직임에 가슴설레기만 했던 중학생 시절, 열쇠달린 비밀일기장에는 당시 애송하던 시가 가득 적혀 있었다.

갈피갈피에는 말린 꽃잎, 네잎클로버, 나뭇잎, 친구로부터의 쪽지도 담겨 있는...

한창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하던 그 시절에 시는 마치 내 마음의 거울이라도 된 듯 또 다른 친구처럼 그렇게 다가왔었다. 때로는 난해하고 때로는 유치하기도 했던 시어들이 그대로 해면처럼 흡수가 되었던 때, 나의 일기장에는 워즈워드, 하이네, 바이런, 릴케. 프로스트, 랭보, 김영랑, 김남조, 김소월 등이 춤추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니 철저히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부터 점점 시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운율이 있고 압축과 상징으로 표현되는 시는 저 높이 떠 있는 별과 같았다. 일상은 주저리주저리 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산문같은 날들이었다.

그래도 가을은 왠지 사색과 침묵과 성찰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하게 해준다.

십여년 전 기꺼이 읽었었던 최영미의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대한 기억과 얼마 전에 만나봤던 그녀의 산문집<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에서 느꼈던 신선함이 이번의 그녀가 고르고 고른 그녀의 청춘의 흔적들이 담긴 <내가 사랑하는 시>를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다행스럽게도 나의 청춘과 함께 했던 시도 상당수 실려 있어서 반가왔다. 특히,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는 뛰는 가슴으로 애송했던 시였는데, 최영미의 풀이로 읽으니 그 때의 느낌이 고대로 되살아났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 외에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주문에서 현대의 음유시인 레오너드 코헨까지의 유장한 아름다운 시를,  그리고 생전 그런 시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했던 아름답고 귀한 시마다 최영미 특유의 자신만의 감정이 실린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해설을 해놓았는데, 바로 그 부분이 이 시모음집을 다른 시집과 구별짓게 하는 매력적인 면이다.

한용운님의 시에 대한 그녀만의 해석에는 새로히 가슴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를 대하게 해주었고,

지리산의 그녀 고정희님의 시 '관계'는 최영미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저릴 만큼 아프게 박혔다. 난 이런 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최영미가 젊은 시절, 탐닉했다는 시를 한 수, 한 수 읽으면서 그녀의 감성과 지성과 지향하는 세상을 엿볼 수 있었고, 더불어 그녀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황야도 천국이 되니"

시란 때때로 이런 것이다..그 동안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인생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향유하라는 최영미, 그녀의 권유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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