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문청시절, 속해 있던 문학동인회에서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한창훈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에 앞서 한창훈보다 한 발 먼저 초대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한창훈과 늘 실과바늘처럼 같이 거론되는 시인 유용주였다.
박상륭은 유용주를 일컬어 곰같은 사나이라고 하고, 한창훈은 고래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과연 그러했다. 우선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유용주는 장수 산골출신의 우직한 사내였었고, 한창훈은 거문도에서 출생한 왠지 이국적인 멋이 느껴지는 바다내음이 물씬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두 명의 작가에게서 박상륭의 위대함을 너무도 간곡하게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고, 당시에는 문단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고 열정적인 그들의 문학세계에 감동을 받았었다. 특히, 술을 좋아하고 문학담론을 좋아하던 두사람에게서 인간의 깊은 체취를 맡았다고나 해야 할까. 그야말로 인간미가 철철 넘치던 두 작가였다.
이후 간간히 작가의 소식을 접하기는 하였지만, 두 작가의 각각 2권 남짓의 책을 사보고는 내게서 멀어져버린 그들의 문학동네.
그런데, 이번에 깊어가는 가을과 너무도 어울리는 한창훈의 산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내 작가의 그리이스신화에 나오는 조각상같은 외모가 먼저 떠오르며 부쩍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좁은 땅, 넓은 바다. 그 어느 쪽이든 몇 발자국만 걸으면 해안선이 닿는 거문도에서 태어난 작가에게 그 해안선은 총 들고 지키는 국경보다 더 시퍼런 경계였다. 그는 그곳에서 언어를 배우고 정서를 키웠고, 지금도 그 곳의 작업실에서 그곳의 언어와 정서로 아름답고도 질박한 글을 길어올리고 있다.바로 그의 <향연>을 통해서 저자는 얘기한다. 이 책은 사람들과, 매 순간 명멸하던 감상의 향연이라고. 饗宴 (잔치를 즐기다)이자 香煙(향기로운 연기)라고.
섬진강의 김용택이 그러하듯, 이제는 거문도를 말하지 않고는 그를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거문도에서의 그의 일과는 참 단순했다. 새벽에 일어나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기, 담배피우면서 그냥 있기, 원고 쓰기, 낚거나 뜯어온 것으로 국 끓여 밥 먹기, 책 읽기, 산책, 생계형 낚시하기,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듣고 있기.
그 단순한 일상속에서 바다와 거문도의 작가 한창훈이 녹진하게 풀어낸 사람과 인생, 그들을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그리움과 희망에 관한 속깊은 이야기가 바로 그의 첫 산문집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독도문제만 보더라도 국토의 변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이 된다. 섬사람들은 외곽에서 대한민국의 국경을 긋고 있는 존재들이다. 발톱 끝 같은 주변부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발톱이 빠져보면 안다.
-184p-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255p-
작가의 향연에 동참하는 내내 나는 서해안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작가의 이름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부안에 살면서 농촌운동과 건강한 글쓰기 운동을 같이 하고 있는 바로 박형진 시인이다. 박형진 시인의 <호박국에 밥말아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과 <한창훈의 향연>은 두 작가의 문체가 서로 달랐음에도 글에서 풍겨지는 냄새가, 그들이 그려내는 바다와 그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유사하게 다가온다. 공선옥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두 작가가 관념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온 몸으로 실천하고 경험한 바를 질박하게 써내는 보기드문 노동자형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내게는 같은 모습으로 느껴졌나 보다. 두 작가는 나이차이도 딱 한 살. 동시대의 비슷한 환경을 가져서 감흥이 유사한 글이 나오는 건인지.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곳의 바람과 햇빛과 공기를 닮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 것을 오늘 알았다. 그리고 한창훈, 그니가 참 멋진 진짜 사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그의 말대로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은 의미를 잃은 시대인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라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 버린 것. 그렇기에 이 시대에 한창훈같은 작가가 더 필요하다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잊지 않아야겠다. 우리나라 문학계에 한창훈,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