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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모"
오늘도 어김없이 6시 반이 되니 사무실 문이 빼꼼히 열리고 나를 부르는 종달새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사무실로 가로질러 누군가 뛰어오더니 내 품에 포옥 안긴 채 볼에 쪽~ 소리를 내며 뽀뽀를 해준다.
우리 '다움'이다. 아름답게 자라라고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다.
올해로 4살인데, 4살 아이답지 않게 매우 영특하고 애교가 철철 넘쳐 우리 사무실 식구 모두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나만 해도 퇴근시간이 6시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움이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아올 때까지 퇴근도 하지 않은 채 오매불망 다움이 뽀뽀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동료가 결혼 10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남편과 상의후에 가슴을 낳은 딸이 바로 '다움'이다. 그런데, 다움이가 돌도 되기 전에 남편과 이혼한 다움이 엄마는 주변의 파양권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번 내 자식이 된 아이를 버릴 수 있냐며, 다움이를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있다. 처음에 다움이를 만났을 때, 선입견이 있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나도 모르는 강박이 있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고민은 싹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들 모녀는 누가 봐도 친모녀지간 같을 정도로 닮아갈 뿐 아니라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여 재혼을 권하는 내게 언제나 다움이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아주 씩씩한 다움이 엄마를 보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사랑과 헌신과 기쁨의 아우라로 둘러싸인 두 모녀를 보면서 같이 가슴 덥혀지는 행복을 맛보고 있다.
한 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고아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가졌었다. 그러나, 정부와 관계기관들의 노력에 힘입어 점점 국내입양이 늘어간다고 하니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혈연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양에 대한 시각을 바꾸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들의 의식의 전환에는 무엇보다도 유명연예인 부부의 입양아와 함께 꾸려가는 모범적인 가정이야기가 한 몫을 했음을 안다.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고 한다.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동료를 보면서 내 삶을 자세를 돌아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일부 엄마들 사이에서는 오로지 내 아이만을 위한, 내 아이가 최고라는 굴절한 사랑이 목격되기도 하나, 진실로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은 사회속에서 열린 사고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는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50년 동안 입양아들을 돌보아 오신 조병국 원장님이 그동안 만나온 입양아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총 3장으로 나누어 22꼭지에 담아낸 내용들은 그냥 일상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리고 감동 가득한 글들이어서 읽는 내내 눈시울이 시큰거리고 콧날이 뻑뻑해져서 혼이 났다.
1장에서는 가장 눈부신 기적 너의 인생은 해피엔드,라는 주제로 병원에 실려온 부모없는 가엾은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겪는 의사로서의 고민과 최선을 다해 치료하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 너머에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인 '간절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곶감달인 물을 먹고 살아난 영희, 고양이에게 우유를 뺏긴 현군이.그 중증장애아 현군이가 부르던 '귓가보다는 마음 언저리에 더 오래 맴도는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해외입양되어가는 아이중에는 특히나 장애아동이 많다고 한다. 입양에 부정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더욱이나 양육비도 많이 드는 장애아동은 꺼리기에 주로 해외입양을 많이 모색하게 된다고 저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미국같은 경우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학교에서도 장애를 개인이 아닌, 사회와 모든 사람이 함께 분담해야 할 몫이라고 보기에, 장애아동에 대한 치료비가 국가에서 지원된다고 하니, 2009년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장애아동들에게는 언제나 그런 세상이 올려는지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다.
평소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생활고를 비관한 부모와 자식의 동반자살, 기사를 보면서 어린 생명들의 스러짐을 안타까와하기도 했지만, 일면 그 부모의 맘자리를 이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되는 철도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채 미국으로 입양된 후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는 평소 동반자살에 대한 이해의 사고가 얼마나 관념적이고 위험한 생각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삶이란 머리를 쉽게 판단하고 예단하는 것이 아닌 직접 몸으로 부딪혀 살면서 깨닫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본다.
2장에서는 세상에 태어난 작고 여린 생명의 의미,라는 주제로 태희,라고 직접 이름지어준 아이를 입양부모에게 넘겨주기까지의 고단한 여정, 그리고 이어지는 태희의 죽음, 뒷간에서 태어난 분녀의 죽음, 의사로서의 회한, 등을 말한다.
특히,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로 표현되는 것의 차이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미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단어에까지 배려하는 손길에서 아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보았다. '버려진 아이'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떨쳐버리고 이내 '발견된 아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끌어내는 저자는 30여년의 세월동안 교차되는 절망과 희망속에서 그 얼마나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냈을지 비록 담담한 필체로 그려냈지만, 그 고뇌의 시간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며 큰 무게로 다가왔다.
거쳐간 아이의 이름까지도 모두 기억하며 행복을 빌어주는 저자의 세심한 사랑은 평범한 수많은 사람이 입양을 통해서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곱절이 된다는 아주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잠시 잊곤 있는데, 이 한 권의 책은 그 이치를 가슴에 깊이 담아보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어쩌면 그 내용이 뻔하지 않겠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읽기였으나, 단순히 눈물샘만을 자극하는 감상에 치우친 책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1960년대 이후의 부모없는 버려진 아이들의 역사와 인권을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현장회고록이었으며, 입양아와 입양가족의 애환, 그리고 소외어린이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한 귀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박봉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된 길을 한결같이 걸어온 저자는 이제 백발이 되어서야 그 일손을 겨우 놓고서 말한다.
세상에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참 많다, 몰인정하고 퍽퍽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장애아 부모와 같은 사람을 늘 곁에 두고 사는 나에겐 꽤 멋지고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라고.
막연히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재할 거라고, 혹은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나에게 그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지해주고, 또한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젊은 날을 바치신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