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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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김영민'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선택한 책, <영화인문학>.

영화와 관련하여 시중에 출판된 책들은 참 다양하다. 음악을 매개로 한 영화이야기, 치유로서의 영화이야기, 이제는 영화로 인문학을 말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것도 일찍이 "장미와 주판'이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이름은 낯익지만, 아직도 그의 세계는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는 철학자 김영민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거, 좀 무게가 있게 다가오지 않는가...철학자가 말해주는 영화이야기라니..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이라는 부제, 역시 예사롭지 않다. 이 책이 김영민표라는 냄새를 아주 강력하게 풍기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그 어떤 사람들도 쓰지 않던 단어, 혹은 용어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혹은 아주 적시적소에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김영민이라는 철학자는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동무와 연인>, <자색이 붉은색을 빼앗다>, <사랑 그 환상의 물매>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간접적인 만남을 가져왔었다. 사실 여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쓸 정도로 만나봤다고 해야할 지 저서의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내 책장에 버젓히 꽂혀 있으니 소개도 할 겸 적어본다. 관심있는 자들에겐 상당히 알려진 책들이다.

 

본인이 만든 인문학 공동체  '장미와 주판' http://www.sophy.pe.kr


을 통해서 급격히 왜소해지고 키치화, 처세화하는 인문학의 중요성과  사람관계에서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말해오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도 영화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소통의 지점을 바로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이라는 소주제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영화인문학'을 내세운 이 글은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매체로 떨어진 영화(보기)속으로부터 전래의 인문학적 가치와 생산성, 그리고 새로운 진지함을 톺아보고 구제하려는 시도, 라고 밝혀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소통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람관계속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의 소통의 기제에 대한 자신만의 특유의 인문학적 사유의 결과를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 풀어놓고 있다.

"인문 人文 은  인문 人紋 인데, 말 그대로 '사람의 무늬'를 뜻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인 셈이고,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진리란 인간의 무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설렁설렁 말하자면, 인간의 무늬 속에 진리의 조건을 두게 되면서 철학적 근대가 열린다."(42p)



총 27편의 영화를 소개해놓고 있는데, 각 영화의 앞부분마다 감독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장식한 후, 그 뒤를 이어 저자의 사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저자가 철학자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유속에 인용되는 문구들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때로는 아주 낯선 내용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끌어옴은 저자의 학문적 지식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조탁을 거듭한 적확한 언어로 표현한 저자의 문장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너무도 절묘하여 절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다만 나의 지식의 짧음으로 인해 가슴으로 젖어오는 감흥이 적었음은 너무도 아쉬운 점이었다. 과연 언제쯤에서야 그의 문장을 잠시 멈춤, 없이도 온전히 가슴에 안을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저자의 책을 온전히 다 소화하지 못한 채 마지막 장을 덮는다. 미처 영화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만난 그의 인문학적 깊이로 재탄생한 영화읽기는 저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함에도 기존의 내가 접했던 영화를 읽어내던 시선과는 너무도 다른 저자만의 개성이 가득한 영화읽기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여전히 그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 책에서 나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본문보다는 오히려  뒷부분에 편집된 개념어집과 한글용어집이다. 김영민식의 사유와 성찰의 세계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개념어집은 곱씹고 또 곱씹어 봐야 할 내용으로 내게는 다가왔다. 한글용어집 또한, 매우 유용했다. 대학의 전공이 무색할 정도로 낯선 단어들로 채워진 한글용어집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삼스런 자각과 함께 국어사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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