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만화가 최규석을 모른다.

들어본 적이 없어서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은 아는 꽤 유명하고 실력도 짱짱한 작가인가 보다. 팬층이 매우 두터운 것을 보면 말이다.

남들 다 아는 사람, 나만 모르면 왠지 바보같다. 그래서 자꾸만 오므라드는 손가락 펴들고 집어든 이 책 <100도씨>

앞부분을 읽어보곤 스치는 첫번째 생각.

놀랍다.

최규석의 이력을 살펴보니 우리 386세대가 흔히 말하는 90년대 학번이다.

이 말은 곧 386세대와는 정서적으로, 정치적으로 확연히 구별이 되는 세대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100도씨>에서 그려내는 우리의 기억들은 그 때 그자리에 같이 호흡했던 사람처럼 너무도 똑같다. 그래서 놀랍다.

최규석의 시선으로 철저히 그리고 세세히 복원되는 기억들. 아프다. 먹먹하다. 저리다. 뜨겁다.

 

5.18

그 때 나는 중1이었다. 광주와 가까운 순창이 고향인 나.

내 주변에는 5.18의 상처와 밀접한 사람들이 실재해 있다.

5.18얘기를 하도 들어서 어떤 때는 눈앞에 진군해오던 탱크를 봤었던 기억이 실재인지, 환영인지조차 헷갈린다.

(확인해 보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순창까지 밀고 왔다고 믿고 있다.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 기억은 맞는 기억이 아닌 거 같다)

그래도 나, 운동하는 사람들 빨갱이라고 생각했던 시절, 있었다.

1987년..내가 인문대 2학년을 다니던 시절.

강의시간표는 짜여져 있으나, 과목의 구별이 없이 늘 스크럼으로만 기억되던 시간들

나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미래를 계획하던 부류의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그 두 영역에 속한 친구들은 많았고, 나는 오지랖넓게도 속절없이 두 영역의 친구들이 모두 이해가 되었었다.

가투, 암호, 가명, 조직, 세포,

이 단어들은 그때 통용되던 의미로서의 단어로는 지금은 사어이다.

나에게는 영호같은 친구도 있었고, 영호누나, 영호형, 영호엄마, 아빠, 홍민이. 등등.

<100도씨>에 출연하는 인물들을 대신하여 떠올릴 수 있는 많은 지인들이 있었다.

한때는 눈물과 가슴의 묵직한 통증없이는 그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눈물 한 방울 정도는 떨어뜨렸나....

생각보다 냉철하게 읽었다. 그것은 이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감정적으로 격하지 않고 아주 많이 순화되어 있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실재보다 낭만적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내 감정이 파도치지 않았나 부다. 그만큼 나의 열정도 믿음도 희망도 순수도 늙어버린 건지도 모르지만....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그들의 죽음의 함께 한 뜨거웠던 우리의 가투...우리가 피로써 쟁취해 냈던 것들...그 뒤에 밀고오는 허망함.

이 책에서 말해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그 당시에 있었다.

 

최대한 한자, 한자 꼼꼼히 느리게 천천히 읽을려고 했으나 만화여서인지, 아니면 우리의 발자취와 너무 흡사해서인지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마음이 답답하다. 쉽게 희망을 말하지 못하겠다. 물이 100도씨에서 끓듯, 사람도 100도씨면 끓는다고????

하여 늘 지금이 99도씨라고 되뇌인다고, 자기암시를 한다고.?!

나는 왠지 하고 싶지 않아진다. 외면하고 싶다.

끓어대지 않고, 즉각 분노하지 않고, 이제는 나도 조금은 정치적이고 싶어지는 속내..뜨거워서 실존했던 기억은 묻어두고, 이제는 더이상 잡히지 않는 희망에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못난 속내를 조심스레 혼자서 입술위에 올려본다.

끓어야 하는 것은 당위이지만, 관념일 뿐이라고!!!!!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오늘 아침 신문에는 쌍용자동차 노조원이 있는 도장공장 위로 헬기가 발암물질들어간 최루액가루를 살포하는 현실이버젓히 실려 있다.

도장공장이 말해주는 현실은 아직도 99도씨가 아니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