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을 좋아한다. 내 몸안에 집시의 피라도 한방울 섞였는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길위에서의 시간에 주기적인 갈등을 느낀다.

지난 겨울부터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한 채 어느새 봄이 가고 있다.

격무와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심신이 피로할 즈음 만난 낭만 제주...심신이 너무 지치면 때로는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일상을 꾸려갈 뿐, 가슴은 늘 버석거린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건조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막상 이 책을 받아드니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설레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너무 드라이해서 좋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할까, 지금의 상태를 잠시 염려했던 좀전의 시간이 우스울 지경이다.

드러내 놓고 붙인 제목이 민망할 수도 있으련만, 낭만이라는 단어만큼 제주의 풍경을 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는 없을 거 같다.

가슴 켜켜히 젖어드는 요상스레 멜랑꼬리해지는 기분은 마침 이 책이 내게 온 날, 창밖으로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표지를 한장 걷어내고 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눈부신 바다 ..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우도의 산호사해수욕장의 그 푸른바다라는 것을.

그리고 네모난 사진에 갖혀 있는 바다가 말해주는 자유를...그 자유로움에는 경계 따위는 없었다.

 

20대 늦은 가을에, 30대 화사한 봄날, 따스한 겨울에, 그리고 40대 바람불던 날에 만난 제주를 각각 기억한다.

20대에는 친구와 함께, 30대에는 가족과 함께, 40대에는 동료와 함께 ...그렇게 제주도 땅을 밟았다.

분명 한나라의 다른 땅임에도 막상 낯설게 다가오는 제주도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 또한 너무 많다. 그들에 비하면 다섯번에 걸친 제주의 기억을 가진 나는 진정 축복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제주의 모습들은 이내 기억속에서 켜켜히 잠을 자고 있던 내 오래된 추억의 조각들을 여지없이 불러낸다.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기듯 가슴깊이 아로새겨진 아름다운 기억들을 상기시켜주는  제주는 낭만적이다.

혹여 발길이 닿지 못했던 곳일지라도 내가 가진 조각들만으로도 능히 퍼즐맞추기하듯 눈앞에 그려지는 제주의 영상이라니....   낭만제주는 더할 나위 없이 로맨틱하다.  

 

사진을 찍고 칼럼을 쓰는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이 아름다운 제주 곳곳의 사진, 그만큼이나 더 매력적인 글들은 때로는 아주 사적인 기록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당히 맛깔스럽다.

여행길에 선 그의 시선은 나의 시선과는 다른 지점이 있었고 그 지점으로 인해 익히 알고 있었던 제주의 모습이 새로히 다가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그의 취미는 무작정 걷기,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성품으로 인한 도시의 숨은 골목 누비기라고 한다. 덕분에 다섯번의 제주행에도 미처 만나지 못한 숨어있는 보석같은 장소를 알게 되는 즐거움이 함께 한다.

 나의 여섯번째 제주여행은 그와 그의 그녀와 산책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새로운 방법의 여행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오래된, 당돌한 그녀가 질투날 정도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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