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잭 린치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세세히 알지 않아도 마치 오래전부터 많이 알고 있던 것처럼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고전작품들은 그것들이 지니는 보편타당성으로 인해 그런 느낌을 주는 경우가 아주 흔한데, 내게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가 하면 겉만 보고도 대충 그 안이 짐작이 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보여지는 모습으로 내용까지 예단했다가 큰코를 다칠 경우가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책이 그러하다.

스치는 바람결에 들었던 것들인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그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내지는 실제로 대문호 셰익스피어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사람이 조합된 인물이 바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등등의 것들.

이러한 단편적인 내용을 떠올리며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를 들었던 나는 이내 그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과정없이 위와 같이 단 한줄로 규정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결론적으로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는 셰익스피어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라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즉,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해서 셰익스피어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여러 방면에 걸쳐서 근거자료를 취합하여 심도있게 고찰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위에서 앞의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의미하며, 뒤의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대문호 문화영웅인 셰익스피어'를 지칭함이다.

 

이 책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가 살아있던 생전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생전의 셰익스피어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사후에 그의 작품들이 어떤 개작의 과정을 거쳤는지, 역사적 상황과 시대적 흐름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이용되었는지, 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누가 연기했고, 시대상황속에서 연극의 자리매김은 어떠했는지, 셰익스피어를 어떤 사람들이 찬양했는지, 내지는 폄하했는지, 종래에는 문화 영웅으로 세계적으로 그 위상을 차지하기까지 어떤 숭배가 있었는지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록 셰익스피어는 없지만, 이런 작업은 매우 흥미로우며 의미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현재의 셰익스피어는 바로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다룬 여러 책에서 과연 그가 정말로 모든 작품을 썼을까하는 의문을 제기했으나, 저자는 이 책에서 그와 같은 여타의 의문에 촛점을 두지 않고, 모든 작품은 당연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는 전제하에 나머지 얘기들을 풀어간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첫 단추라고 보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스트랫퍼드의 셰익스피어가 아닌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나 감성들을 꿰뚫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안에서 보여지는 통찰력이 주는 힘이다.

따라서 개작이나 시대적 상황에 이용되었거나, 따위는 중요하지가 않다.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얼마나 사랑하고 이해하고 위로받고 있는지가 핵심일 뿐.

앞으로도 셰익스피어는 뜨겁게 논쟁의 중심속에서 읽힐 것이며, 여전히 시대적 정치적 상황속에서 그 위상이 변화할 것이다. 다만,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변화의 중심에 우리가 함께 할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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