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토정비결 1
이재운 지음 / 해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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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은 어디에 있는가!!

 

해마다 연초가 되면 습관처럼 토정비결을 찾아보곤 한다. 한 해 가족들의 운수를 짚어 보면서 좋은 내용에는 한결 마음이 밝아지고, 그렇지 않은 내용에는 올 한해 조심스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지, 라고 추스려보곤 했다. 한때 단이니, 주역이니, 선도니, 더 나아가서는 티벳 사자의 서, 같은 영혼의 세계를 다루는 책을 섭렵하면서 내생이나 윤회란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 그 여부에 대해서  깊이 심취했던 적도 있었다.

 

1992년에 첫 출간된 [소설 토정비결]이 300만 부 이상 판패된 베스트셀러로서, 토정 이지함 선생의 운명론적인 민족성과 예언적 인생관, 그리고 한민족만의 독특한 해학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는데, 이번에 5판 인쇄에 들어가며  2부에 해당하는 [당취]까지 묶어내어 총 4권으로 발간하였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읽지 않은 줄 알고, 다시 손에 잡았더니 전에 읽었었던 느낌이 나는 책들..이 책이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당취]부분은 읽은 적이 없었기에 예전 기억을 되살려가며 4권으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내가 없이, 내 처지와 내 시각이 없이는 학문도 진리도 없다네.1권 60P

 

양반가의 자제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범상치 않았던 행동으로 널리 이름이 떨쳤던 토정 이지함.

대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이제 인생에 탄탄대로만이 열려있을 거 같은 이지함의 인생에 갑자기 닥친 불운의 그림자가 있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억울한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토정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게 된다.

인생의 골목길 저편에서 다가온 알 수 없는 힘이 예고도 없이 찾아와 사람의 앞길을 제멋대로 흔들어놓고 가버린 것이다.

불시에 찾아오는 운명을 대비하는 것, 바로 토정이 그토록이나 알고 싶어했던 세상살이의 이치였고 그 이치를 알고자 공부하고 수련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문제를 떠나서  나중에는 백성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참된 목민관을 모습을 보여준다.

북창이 길을 가리키고 화담이 열어젖힌 선가의 세계에 들어선 이지함. 두 분의 깊은 사랑으로 천문, 지리, 역학 등을 수학하고, 특히 서화담의 조선을 염려하는 높고 깊은 뜻에 의해 이미 혼은 이세상을 떠났으나 백이 지기를 끌어모아 박지화와 함께 조선천지를 직접 같이 돌면서 지세와 물세를 익힘으로써 훗날 왜란과 호란을 대비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남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미래의 세상을 내다보는 식견을 갖게 된 이지함.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던 이지함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능히 잔재주를 부리면 봉이김선달도 아쉽지 않은 돈을 벌어들여 일신의 안녕을 꾀할 수 있었을 텐데. 이지함은 그러질 않았다. 또한, 하늘이 하는 일을 인간이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박수 두무지를 통해서 깨달았음에도 선가의 세상을 즐기면서 세속의 때를 묻히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이지함 선생을 그러질 않았다.

자신의 길은 숲이나 계곡같은 곳에 있지 않고, 그의 길은 백성 사이로, 제 목숨 하나 부지하고 살기에도 버거운 사람들 사이로 나 있었음을 가슴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승 서화담의 " 운명에 맞서 저렇게 의연한 이는 하늘도 비켜가는 법이지. 제가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 스스로 끌고가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힘도 미치지 못한다네(92P 2권)" 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크다.

조선에는 조선인이 쓴 운명학이 없다며 이지함에게 전한 화담의 책 [홍연진결]을 바탕으로 대환란의 시대에 백성들을 위무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토정비결]을 쓰게 되었다. 이는 불쌍한 백성들을 생각하여 쉽게 말하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의 마음과 가히 비견된다고 할 만하다

조선의 운명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순응할지라도, 단 한사람의 목숨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이 땅의 가엾은 백성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이지함이 있었기에 2부에서 활약하는 [당취]들의 애국심도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을 내면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당신이 하기에 따라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누가 주체입니까? 당신의 문제는 당신이 주체입니다. 부처도 신명도 하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심산유곡에 핀 꽃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누가 보아주겠는가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야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남을 의식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남을 의식한 학문도 학문이 아닙니다. 남이 아니라 당신이 중요한 것입니다.(2권 395P)

 

이렇듯 [토정비결]은 민중의 사기를 북돋거나 주위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경계와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주는 민중계몽서로서 백성들이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정립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토정은 천과 지에 조화하는 자연 철학을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화랑도, 국선도, 선가, 단사상,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일제강점기때 우리민족의 얼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왜곡되고 없어지고 오염되어 버린 그래서 이제는 몇몇 사람들만이 맥을 이어가는 우리 고유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길 바래본다. 홍익인간 사상 외에는 뚜렷히 내놓을 만한 우리 고유의 사상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거 미신이나 종교의 개념과는 달리 들여다 봐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어느덧 불혹을 넘기고 보니, 한삶의 반생을 살았다 싶지만, 진짜 나만의 생을 사는 건 지금부터가 아닌가 한다.

지난 날에는 꿈꾸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일테면, 장래 나의 배우자는 이러이러했으면 한다, 내 아이는 이런 아이였으면 좋겠다. 나의 미래는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

살아오는 날들, 그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느냐고 묻는다면, 비록 고개를 주억거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매 순간,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나름 디뎌온 길이 지금의 나인 것이다.

꿈꾸던 삶의 모습이 있었다. 단순히 부자로 산다거나, 명예를 얻는다거나, 이름석자는 꼭 남기겠다는 열망이나, 아니면 재미있게 산다거나 하는 식의 모습이 아닌,....

그러나, 하늘이 내게 허락한 삶은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과는 늘 어긋났다. 이제야 나는  알 거 같다. 나에게 주어진 나만의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토정 이지함도 자신이 뜻을 펼치고 싶었던 삶의 형태는 살아온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조카 이산해처럼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훌륭한 임금을 보필하며 바른 치덕을 쌓고, 개인사로는 다복하고도 따듯한 가정을 꾸리는 삶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지만, 그에게 하늘이 허락한 삶은 그런 순탄한 삶이 아니었고, 이지함은 그런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기꺼히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주 매력적이고 인간적이면서도 훌륭한 이지함선생님이다.

 

진리란 완벽하게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바쳐 찾아가는 과정이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261P 1권

 

어디 진리뿐이겠는가...사랑이란 개념도 신의 개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신의 그 존재유무를 가리기 이전에 완벽한 자를 신이라 이름한다면 그 신을 닮고자 하는 자세, 그 신을 우러러보는 '앙'의 자세, 바로 그 자세가 신앙이며 그 신앙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을 해본다.

 

다시 이 글의 처음로 돌아가서,

사람의 운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마음자리에, 오늘 한 발 내딛는 발걸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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