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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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천의 한 중학교 여학생이 친구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트브 동영상까지 제작되어 세계인이 보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골목에서 코피를 흘리며 빌어대는 친구를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영상을 보면서 경악스러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피의자인 여학생이 한 말이다.

'아직 만 13세이기 때문에 소년원을 안 가도 된다'라는 말..당시 학교에서는 3일간의 봉사활동으로 매듭을 지었다고 한다. 어리다면 어린 학생이 벌써부터 법을 악용하는 태연한 모습에 실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형제 폐지와 관련하여 그 존폐여부에  대한 논란만큼이나 14세 미만 청소년들에 대한 형사관련 처벌법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와 여론이 갈수록 드높아지는 상황이다. 두 내용 모두 밑바탕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현 사회가 갈수록 경쟁위주의 자본논리로 팽배해 가다 보니 아직은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청소년들의 범죄 또한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잔인성과 횟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가끔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이웃나라인 일본의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접할 때마다 경악하곤 했었는데, (내심 일본의 국민성이나 교육방식에 기인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청소년 범죄는 더이상 이웃나라의 소식만은 아닌 것이 되었다.

거리를 다니다가도 떼를 지어 다니는 여중생이나 남중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피하게 되는 심리는 또 무언지. 그네들의 옷차림이 살짝 불량스럽기라도 할라치면 절로 두려워지는 마음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부딪히는 생활영역 공간에서 버릇이 없는 학생들에게 애정어린 훈계를 하는 어른들이 이제는 용감한 사람으로 평해지는 세상인 것이다.

그네들을 향한 교육의 문제는 어제 오늘이 아니기에 그 것은 예외로 하기로 하자.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를 얻은 제5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담고 있는 주제 또한, 두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바쁜 일정에 차일피일 미뤄두다가 무심코 한장 넘겨본 나는 이내 책속으로 빠져들었고, 아주 무서운 힘으로 '천사의 나이프'는 나의 심장을 갈랐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주제도 신선했지만, 문장도 아름다웠고, 처음부터 끝 문장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스토리의 짜임새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으며, 미스터리가 가지는 그 반전의 힘은 참으로 놀랄 만 했다. 이 책이 저자의 첫 소설이라니 실로 대단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운영하면서 4살 난 딸 미나미와 함께 살아가던 히야마씨는 어느 날 형사의 방문을 받게 된다. 히야마씨의 가게 인근 공원에서 소년B가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3년 6개월 전 가족의 단란한 일상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했던 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히야마는 아내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면서 편안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사건 이후로 두 개의 시간을 살아가는 히야마. 그 사건 때에 멈춰버린 시간과 그 후로 3년 6개월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됐던 시간. 멈춰버린 시간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 과거가 되지 않은 채 현재의 시간에 침범해 들어와 때때로 지독한 아픔과 고통을 준다.진정한 용서를 하고 미나미와 행복한 생을 살고 싶었던 히야마는 세 소년들의 과거와 갱생의 삶을 찾아 나서는데.....그 여정에는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고구마줄기에 딸려나오는 고구마처럼 한 사건의 끝이 보일 때 쯤이면 다시 새롭게 전개되는 또다른 살인의 사건들...

소설의 전개는 사건해결에 촛점을 맞추어 풀어가면서 가족의 의미와 진정한 용서에 대한 심도있는 질문을 같이 해준다.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진정한 사죄없이는 가해자의 참다운 갱생의 삶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소중한 사람이 당한 것과 같은 괴로움을 맛보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분을 꾹 억누르고 있지. 이 이상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범죄 피해자는 평생을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 줬다네" (p81)

 

언젠가 소년들이 스스로 범한 죄를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사회로 돌아와 자신들과 마주 서기를. 잃어버린 것은 결코 돌아오지 않지만 피해자 측의 괴로움을 다소나마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가해자뿐인지도 모른다.(p83)

 

어쩌면 참혹한 상처의 고통이 있기에 다른 삶의 모습도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피해자 히야마의 마음의 여정이 결국은 이 사건을 해결하게 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설사 형법 제41조의 법 조항으로 인해 14세 미만의 청소년가해자에게는 물리적인 처벌을 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는 나름의 방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다른다.문득 어디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불행은 랜덤으로 온다는 말..이 책에 묘사되는 각 종 사건들은 사실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처럼 보여지나, 우리에게 미소짓고 있는 생의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숨어 있다가 불시에 우리의 삶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 송두리째 흔들어 혼돈속에 빠뜨린다. 결국 각자의 삶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지탱해 내야 할 무게인가,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일까, 와 진정한 용서와 이해는 또한 무엇인가,이다.

인간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두 가지 입장을 가진다. 그 입장이란 그 사안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상황은 아주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 책의 나오는 여러 모습의 가해자의 입장과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그 모습은 발견된다.

누구에게라도 결코 일어나선 안되는 사건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 사건들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처가 과연 시간의 흐름에 의해 치유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세상사 거친 바람에 풍화되어 옅어졌을 뿐, 혹은 가슴 깊이 묻어두었을 뿐일 것이다. 우리네 삶에는 법이 해결해 수 없는 영역이 너무도 많다. 아무리 악법도 법이라지만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일진대, 이미 사건이 일어난 연후에 그 해결에 촛점을 맞추는 법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이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방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길 간절히 바래본다.

처음에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왠지 섬뜩해지는 느낌은 비단 칼이 주는 느낌 뿐 만은 아니었다. 칼과 함께 검은 바탕위의 선명하고 화려한 무늬가 주는 섬뜩함이 마치 선연한 피를 보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표지의 세 개의 칼과 유리보석같은 무늬(소설의 내용을 통해 알고 보미 이는 만화경의 세상이다)는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이다.

추리소설은 그 동안 특별히 관심가졌던 분야가 아니었지만, 모처럼 만난 책이 <천사의 나이프>였음을 감사해야겠다. 아무래도 한동안 추리의 세상으로 깊이 매몰될 듯 싶다. 이 소설은 스릴만을 추구하지 않고 그 안에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담은 진짜 멋지고도 완벽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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