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앗 - AJ공동기획신서 2
김서영 지음, 아줌마닷컴 / 지상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언젠가 그 기억도 희미하지만, 아나운서이자 라디오 디제이인 이숙영씨의 [애첩기질 본처기질]이라는 책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성적이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직업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아시다시피 이숙영씨는 굉장히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다. 그 책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숨어 잇는 본처기질과 애첩기질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었다. 결론은 자신은 애첩기질이 더 많은 여자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고 따라서 남편에게 사랑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는 그러면서 당당히 본처로서 살 것이다, 라는 아주 팔자 좋은 여성의 전형을(적어도 내 느낌에는) 보여주었었다. 내심 그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숨어있는 여자로서의 기질은 애첩에 가까운지 아니면 본처에 가까운지 대조해보기도 했다. 은연중에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애첩기질이 많기를 바랬지만, 불행히도 나의 타고난 성정은 애첩기질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인 '시앗'은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바로 그 시앗이다. 그러니까, 조강지처가 아닌 첩이라는 말인 것이다.

아주 가까운 친구 중에 이혼을 해서 사내애 하나를 키우고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마흔줄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날씬하고 동그란 눈에 소녀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 반듯한 친구이다.

이런 친구가 이혼을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캠퍼스커플로 유명했던 이벤트의 황제인 남편의 지속적인 바람때문이었다. 5번이나 용서했는데도 여전히 그 버릇을 못 버리는 남편, 더이상 그 모욕을 견딜 수 없어서 친구는 내가 결혼한 이듬해에 이혼을 했었다. 언젠가 모임에서 술 한잔을 하더니 아들을 보면 자신이 이혼을 잘 한 건지, 의문스럽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 그 친구는 이혼 당시의 정신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안온한 일상을 꾸려내고 있지만, 어쩌다 그녀의 외로움이 감지되어 전화라도 할라치면 성당에서 피정을 왔다는 내용이나, 친구와 절에서 스님과 차를 마시는 중이라는 말이 건네져 오곤 했다. 최근에 만난 친구는 어서 늙어서 조용한 시골에 가서 볕바라기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삶의 열정이 거세된 쓸쓸한 친구의 얼굴이 마음이 이토록이나 남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살면서 느끼는 삶의 쓸쓸함을 그녀의 얼굴에서 깊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서영님은 진즉에 아줌마닷컴에서 알고 있었다. 그 당시 김서영님의 글은 인기폭발이었고, 그런만큼 옳고 그르냐의 분분한 의견으로 인터넷을 달구곤 했었다. 그러나, 누가 그녀가 선택한 현재의 삶을 옳고 그르다의 관점으로 재단할 수 있겠는가. 나는 다만, 그녀의 삶에서 가슴 절절히 느낀 것은 쓸쓸함이었다. 가을날 잎이 다 저버린 길을 나 홀로 걸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녀의 생을 관조한 듯한 미소가 마치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흔히 얼굴에 주름 쪼글쪼글한 할머니들을 만나면 입담 구수하게 해주던 그 말, 내 지난날을 소설로 쓰자면 열권도 넘을거여..바로 그 말을 실감케 하는 저자의 삶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가 막히고 어이없어서 종래에는 그 시절을 살아낸 저자에게 화가 날 정도였지만, 분명코 이 에세이는 소설같은 실화인 것이다.

저자의 남편은 이제 돌싱이 된 내 친구의 전남편처럼 그리도 살뜰하고 다정하고 젠틀한 남자였지만, 문제는 그 상대가 모든 여자였다는 거에 있다.

명문대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 때 드라마를 쓰고 싶어했으나, 정작 쓰고 싶어했던 드라마는 쓰지도 못한 채 온 몸으로 한 생을 드라마틱하게 살아내야 했다. 정말 사람을 바꾸는 것은 인생의 길목에서 어떤 사람과 조우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겠다.

그녀 삶에서 등장하는 세 사람은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 친구의 조언이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도 한세상살이의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는 자의 혜안이 느껴진다. '그 여자가 그사람곁에 있음을 이제는 이해하고 고맙게 여기라고. 그런 사람을 너 혼자서 감당할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자기가 그저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시앗' 자리의 그녀도 저자가 친언니같다는 고백이 그저 예사롭지만은 않다. 모두가 외롭고 쓸쓸한 인생들....그래도 굳이 죄인을 꼽으라면 난 당연히 어리석고도 아이같고 단순한 남자의 본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한 동안 그녀가 운영하는 다음카페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을 기점으로 다시 접속해보니

요즘의 그녀는 둘째 아들이 낳은 손녀재롱을 보는 재미로 하루하루가 바쁜 듯 하다. 그러나 그 바쁜 와중에도 변함없이 당신에게 주어진 쓸쓸한 삶에 순응하는 모습은 내게 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십자가인 할아부지도 손녀사랑만큼은 그녀 못지 않은 거 같다. 삶이 이울어가는 노년 즈음에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정녕 무엇일까..그녀의 삶을 조심스레 엿보면서 어쩌면 나는 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