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대만작가이자 털보 스페인 남자 호세와의 사막에서의 특별한 신혼일기인 [사하라 이야기]로 유명한 싼마오라는 이름 석자는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비록 [사하라 이야기]는 인연이 닿지 않았으나, 이제 [흐느끼는 낙타]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제목이 주는 서정성만큼이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막의 그 모래빛을 닮은 표지 안에 살짝 눈을 감은 채 행복에 겨워하는 낙타의 표정이라니. 내 시선은 그 낙타 머리 위의 별빛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낙타가 이율배반적으로 흐느끼고 있다니..즐거워서, 혹은 행복해서 흐느끼는 경우는 없으리라..슬픔에 겨워서, 오래된 슬픔을 스스로 달래는 듯한 흐느낌..도대체 무슨 일이 사하라 사막에서의 싼마오는 무슨 일을 겪는 것일까..

산문집으로 알고 읽은 이 책은 아름다운 사하라 사막이 주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인간군상의 삶의 모습들로 인해 마치 비극적이고도 슬픈 그래서 더없이 아름다운 한편의 소설같았다.

싼마오가 호세와 함께 살았던 서사하라는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라이며 원주민은 사하라위족이다.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곧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점령하여 서사하라 해방전선과 모로코 간의 게릴라 전 상태를 지속하다가 1988년 유엔이 평화안을 중재했지만, 모로코의 거부로 현재는 모로코 땅도, 독립국도, 식민지도 아닌 채 오랜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과 전쟁포로가 양산되고 있는 곳이다.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와 바다를 사랑하는 호세, 그들은 이 책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유와 일상에서 건져올리는 소박하면서도 별빛같은 행복, 그리고 서사하라의 낯설면서도 정감어린 땅에서 만나는 잊지 못할 인연들의 이야기를 하나 가득 풀어놓는다.

벙어리 노예의 지혜로움, 겸손함, 현명함, 재주, 그리고 가정을 소중히 하는 마음은 인간이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 노예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맞닥뜨리는 상황은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처참하다.

동료와 동생을 사하라위족에게 잃어버린 후 술과 함께 세월을 보내던 중사, 그러나 그 중사가 폭탄으로부터 죽음으로써 구한 사하라위족 아이들. 그 중사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서사하라의 정치적 상황은 과거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너무도 흡사하다. 유격대원인 파시리는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의 독립군과 자꾸만 오버랩되어 가슴이 아프다. 샤이다는 또 어떠한가. 그녀의 삶과 그녀의 꿈과 그녀가 지닌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녀의 죽음을 더 처절하게 한다.

자연속에서 하얗고 검고, 회색빛, 주홍빛의 아름다운 사막을 연상했던 그 곳에 이토록이나 참담한 현실이 숨어 있을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섭씨 55도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상상으로써만 가능했던 서사하라 땅은 싼마오의 생기발랄하면서도 감수성어린 그리고 소탈하면서도 한 구석 깊이 우수가 담겨있는 듯한 필체로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흐느끼는 낙타는 한때나마 행복했던 그 벙어리 노예이기도 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샤이다이기도 하며, 스페인 사막군대 중사이기도 하고, 샤헤이피(친구)인 그들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싼마오이기도 한 것이다. 아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인간이 인간에게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구나  '흐느끼는 낙타'일 수 밖에는 없으리라. 사실 세상은 봄날을 맞이하여 지극히 따사롭고 평화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서사하라 하늘에도 여전히 빛나는 별을 뜰 것이고, 아침이면 말갛고 유려한 여인의 몸뚱이처럼 사막의 아름다운 그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흐느끼는 것이 비단 사하라 사막의 낙타뿐이겠는가.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세상속에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요, 또한 사람사는 세상사에는 어찌 기쁨만 존재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인간이 같은 인간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그런 일만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이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자꾸만 길을 나선다. 아무래도 싼마오의 [사하라 이야기]를 만나러 가까운 서점에 나가봐야 할 거 같다. 싼마오..그녀가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 너무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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