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2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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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접한 고전이다.

하얀색의 겉표지를 들어내니 연두빛 고운 색이 내 마음을 아련하고도 가볍게 해준다.

마치 고전을 대한 내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음을 눈치라도 채듯이 말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 때문이다.

그녀의 6개의 작품 중 내가 읽어 본 책은 제일 유명한 <오만과 편견>, 단  한권이다.

그것조차도 20여년전인 여고시절에 읽어봤으니,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둔다.

그러나 고전이 주는 위대한 매력을 알고 있기에 마음을 굳게 다지면서(굳게 먹어야 할 정도로 요즘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우울하다ㅠㅠ)책을 잡았다.

341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특별한 사건 전개없이도 흡인력이 대단했다.

켈리치 홀, 어퍼크로스, 라임, 바스 등을 배경으로 주인공 앤 앨리엇을 중심으로 한 영국상류층 사회의 사교모임과 그 모임에서 부유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아가는 주인공 앤이 자신이 진정으로 귀속될 수 있는 집단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가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거침없는 생기발랄함을 보여준다면, <설득>의 앤 앨리엇은 이 또한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젊은 날의 좌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적적인 인물이다. 소설상 앤의 나이가 27살임을 감안할 때,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감정이입이 안 되지만 말이다.(사실 아직도 연애하기에 팔팔한 나이인데 말이다)

전혀 관련이 없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모래빛깔 머리의 소유자인  헐리우드 배우 기네스 펠트로우가 자꾸만 연상이 되어 앤의 캐릭터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우아하고 섬세하고 취미가 고상하고 따뜻하며 소신있는 앤....

 

준남작이라는 지위와 그 허상이 가져다는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면이 아닌 외모에 집착하는 월터경과 엘리엇가문의 큰딸 엘리자베스, 두 언니들보다 못한 외모를 지녔지만 욕심이 많은 동생 메리에게 치여 눈에 띄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가는 앤은 그러나 그녀의 섬세하고 동정심많고 따듯한 성품을 한번이라도 겪은 사람은 누구나 그녀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아빠와 언니의 사치와 낭비벽으로 현재의 집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바스로 이사를 하게 된다. 앤에게는 예전에 사랑했다 헤어진 프레드릭 웬트워스 대령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제 소설은 주변의 인물들과 앤과 웬트워스 대령의 일상을 서술해 나가면서 해피엔딩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 과정중에는 당시 영국사회의 구성원들의 전통적인 신분사회와 그 가치를 배격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양한 사건들속에서 전개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은 앤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이 맞물려서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설득이라는 제목은 이제 이 소설에서 조화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젊은 날의 무분별한 열정으로만 치닫는 결정이 아닌, 주변의 상황이나 상대방의 입장, 자신의 의심스러웠던 마음 한 귀퉁이까지도 조화롭게 긍정을 얻어내는 것. 지난 날의 실연의 아픔이 있었기에 앤과 웬트워스 대령은 이제 8년여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고 완숙한 자신들의 사랑의 결합에 완벽히 설득당하고 또한 기존의 장애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성에 대해서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그건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니까 탐낼 필요는 없어요) 바로 더 오래 사랑한다는 거예요. 사랑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희망이 사라졌을 때도 말이지요"(P319)

앤의 이와 같은 말은 비록 상황이나 조건을 달랐지만 나의 연애관과도 완벽히 일치했기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결국 대령의 친구인 하빌과 나누었던 이 말은 웬트위스 대령으로 하여금 격정적인 러브레터를 쓰게 하고 만년필을 떨어뜨릴 정도로 긴장한 채 썼던 러브레터는 또 얼마나 낭만적인지.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떨림과 감격은 내가 앤이라도 된 양, 볼이 발그레 상기될 정도다. 비록 앤은 젊은 시절에 어쩔 수 없이 신중함을 선택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로맨스를 배우게 되면서 그동안 굳게 지켜왔던 앤의 이 신념이 결국은 그녀의 사랑을 현실에서도 완벽하게 완성시킬수 있게 한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믿음"과 "영속성"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앤이라는 인물은 저자인 제인 오스틴을 그대로 캐릭터화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설득]의 앤처럼 젊은 날 잠시 연애했으나 남자측의 개입으로 곧 헤어진 뒤,  넓은 토지를 상속받을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은 후 수락하고는 이내 다시 철회를 반복한 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완성하지 못한 사랑을 <설득>의 앤을 통해서 대리만족하지 않았나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다. 작가는 생전에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 '애정없이 결혼하기 보다는 무엇이든 다른 것을 택하고 견뎌야 한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물질적 풍요와 유복함보다는 애정에 의한 결합을 옹호하는 신념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오만과 편견>과 <설득>에서 보여지는 애정관을 보면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조용하면서도 격식과 예의를 갖춘 품격있는 연애이야기는 에로틱한 장면이 단 한장면도 없었음에도 시종일관 나의 심장을 끝까지 놓아주질 않았다. 깊이있는 로맨스를 할 줄 알았던 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았던 앤. 주변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줄 알았던 앤.

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앤 엘리엇양에게 조용히 설득당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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