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앞의 잣나무 - 중국 10대 선사 禪기행
정찬주 지음, 송영방 그림, 윤명숙 사진 / 미들하우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늦은 가을도 이울어가던 어느 주말, 지리산을 찾았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실상사에서 부처의 게송 한마디라도 들을까 하여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조촐한 건물하나가 눈에 띄니 정면에는 '뜰 앞의 잣나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간단한 기념품이나 차를 파는 곳이었다. 뜰 앞의 잣나무,라니, 과연 이것이 무슨 뜻인가? 그 때 가졌던 의문은 이 책을 만나게 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책에 대한 설명을 접해보곤 처음에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단순히 중국의 10대 조사가 머물렀던 가람기행기라고만 생각하기엔 그 내용이 너무 심오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행문이라는 형식과 중국의 사찰사진이 첨부되었다는 부연에 어쩌면 부질없을 내 욕심이 그 두려움을 이기고 말았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그 뿌리는 내린 지는 참으로 오래되어 우리삶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나

막상 그 교리나 말씀을 알고 이해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어린 시절부터 뒷산 가까운 암자나, 가벼운 원족코스에 자주 등장하는 주변의 크고 작은 절들. 산중턱이나 혹은 깊은 곳에 고즈넉이 앉아서 세속의 우리들을 기꺼이 맞아들여 한자락 고통을 넉넉히 씻어주는 가람들은 우리의 문화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념과는 별개로 마음이 고단하고 번잡할 때면 늘 떠올리는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던 사찰이 내게는 참으로 많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베란다 창밖으로도 논산 관촉사에서 구입한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흔들리고 있다.

불교는 흔히 선종과 교종으로 나뉘는데, 이 책은 중국의 초조 달마에서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마조, 조주, 임제 에 이르는 선종의 벼락같은 깨우침의 내용을 중국 10대 선사 선(禪)기행을 중심으로 풀어놓고 있다. 중국대륙이 워낙에 넓은지라 생소한 지명과 그만큼이나 생소한 사찰의 이름은 지도까지 펼쳐가며 독서에 도움을 구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지다. 그리고 선문답같은 말씀과 글로 가득찬 내용은 많은 숙제를 던져주기도 하였으나, 문득 맑은 차향이 코를 스치듯, 눈이 말간해지는 느낌은 이미 세속의 때에 절은 나에게는 너무도 의미있는 책이기도 했다. 육탈한 채 하얀 뼈만 남은 듯한 굵은 측백나무가 있는 중국의 사찰을 사진으로만 대해도 은은한 연꽃 향내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이 책의 저자와 그 일행은 순례자의 자세로 조사의 법신을 향해 향 사르고 차 한 잔 올리며 조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조사의 법문을 듣고 실천함으로써 통천으로 가는 그 깨달음을 얻는다.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뜰 앞의 잣나무"가 의미하는 바는 삶의 일상 속에서 본래면목을 찾으라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실질적인 선으로 보편화라는 것, 참선은 전문 수행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 천불상이 의미하듯이 모든 자에게 불성은 있으니 일상 속에서 늘 깨어 있음으로써 참된 나를 찾으라는 뜻이다.

이미 불가에 관심이 깊어 수행하는 자들은 이 책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화하지 못한 내용이 많았어도 저자와 함께 기행하면서 얻는 소소한 즐거움도 많다. 차에 대한 얘기라든가, 중국관련 옛 고사들, 그리고 사찰의 유래 등. 그 중에서도 특히 고려승 지적, 신라승 법랑 등...우리나라 출신의 고승들을 사리탑으로 만난 기쁨이 경이로왔다. 우리의 조계종을 원류를 중국 선종에서 찾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늘 세상사 욕심과 번뇌로 어지러운 내 마음이 마치 푸른 대비가 쓸고 지나간 듯 정갈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마음마당에 지나가버린 오늘처럼 낙엽이 지고 먼지가 쌓이리라. 바로 그때 책장에 꽂힌 이 책을 다시 꺼내보리라. 조사의 말씀이 귓가에 여운처럼 남아서 자꾸만 맴돈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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