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
손성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지금 나이가 50대 전후인 사람들은 아마 이 노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도 술 한잔 들어간 남자분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아빠의 청춘*

원더풀, 원더풀 , 아빠의 청춘,...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이렇게 가사가 이어지는 노래.. 이노래를 듣다 보면 한사람의 지난 날이 아슴아슴하게

가슴을 젖어오는 느낌이 달콤하면서도 애잔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그런 아릿한 기분.

 

딱 그랬다. 바로 [럭키서울브라보대한민국]이.

책을 받아보고 '책머리에'를 읽으면서부터 내 입에서는 절로 '아빠의 청춘'이 흥얼거려졌다.

언어의 조합도 딱 맞춤이지 않은가. 내가 언급한 노래와 책 제목이.(저자가 아니라면 별수없지만 ㅎㅎ)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책은 구한말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의 그것처럼 시대상, 생활상을 담아낸 책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도 많이 있지만, 사실적인 자료와 저자의 직업에 근거한 기사들을 중심으로 한 글들은 참으로 상세하여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양 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지나온 브라보 대한민국의 모습과 원더풀 나의 반생을 제대로 추억해 볼 수 있었다.

 

아빠 손 잡고서 동네 이발소에 가서 높은 의자에 빨래판을 얹은 채로 상고단발머리하던 계집아이, 그 계집아이는 자라나 동네 골목에서 해가 지도록 말뚝박기, 사방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비석치기, 오징어놀이하던 어린날, 그런가 하면 여름날밤 동네 강에서 미역감던 추억, 쌀 한 되 퍼 담아 이웃마을 원두막에서 복숭아 10개랑 바꿔왔던 일들, 기억 저편에서 까마득히 멀어졌던 그림들이 눈앞에 다가와 차례로 펼쳐지는 느낌...그 느낌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달콤쌉싸름하다.

 

국민학교 3학년쯤이었나...동네에서 두번째로 텔레비젼을 사게 되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집 너른 마당에는 동네 마실꾼들을 위한 멍석을 펼쳐지고 귀한 텔레비젼은 마루에 내어놓고..그 밤이 어떻게 지나간지는 기억이 희미하다..다만, 다음날 아침, 장날에 사놓고선 아까워서 한번도 신지 못했던 색동의 코빼기고무신이 없어져 버렸다. 그 상실감만 선연히 떠오른다.

책에서는 안 나왔지만, 전라도의 국민학교에서는 잔디씨 훑어가기 숙제가 있었다. 편지봉투를 가득 채울려면 수업 끝나고 벌판 여기저기를 한참을 헤맸어야 했다. 그래도 낄낄낄, 재밌기만 했었던 순박한 70년대 어린이의 모습이다. 

 

중학교 시절에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통행금지 제도가 없어졌다. 그 당시에 읽었던 책 중에 공상과학소설이 있었는데, 우주선이 날고, 로봇이 말하는 미래의 세상이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남자아이가 통행금지시간에 걸릴까봐 바쁘게 귀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미래과학소설을 쓴다는 작가가 통행금지해제라는 제도도 예측을 못하나, 하면서 어린마음에도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와 동시에 작가라는 직업은 단지 글만 잘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와 더불어 더 나은 세상을 구현할 수도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

 

지금이사 난방도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로 하고 있지만, 국민학교시절에는 산에서 나무해다가 온돌을 덮이는 난방이었고 그나마 중학교 들어서서 연탄으로 난방을 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유학을 온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직접 밥을 해먹게 되었는데, 지금도 밥하는 것은 자신있지만 당시에 꿈많은 소녀였던 나는 겨울에는 연탄밥, 여름에는 곤로밥도 잘도 지었었다. 11월에 들어서면 그 해 겨울을 날 연탄 500장을 들여놔야만 맘이 놓이던 시절이엇다.

고등학교시절 내가 살던 도시에도 '필하모니'라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속칭 장안의 난다긴다하는 애들은 이곳을 거치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 같은 교회를 다니던 남자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아서 )

필하모니는 당시 입시에 대한 중압감으로 힘들어하던 우리들에게는 해방구같은 장소였다.

 

책에 나오는 대학가의 각종 미팅명칭들...읽으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풍경들이다.

요즘 대학생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낭만이 있는 모습이다. 사실 낭만이란 적당히 배고파야 그 말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요즘은 개개인의 삶은 비록 상대적 빈곤속에 허덕일 지라도 예전에 비하면 너무도 여러가지 면에서 풍요로와 낭만이 많이 사라진 거 같다.

 

오빠방에서 보았던 선데이서울(개인적으로 안타깝다, 보관하지 못한것이), 동네에 오면 꼭 들르던 방물장수 아주머니, 가락도 멋지던 엿장수 아저씨, 하드케키 장수, 통기타, 공중전화 부스, 삐삐...아, 그러고 보니 난 삐삐 세대다. 요즘은 남녀가 사귀게 되면 핸드폰을 많이 사주곤 하던데, 난 남편을 만났을 때 삼성에서 나온 10만원짜리 삐삐를 받았다. 나보다 삼년뒤에 결혼한 내 동생은 핸드폰을 제부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렇듯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불과 몇 년전의 풍속들이 아주 까마득한 시절로 느껴지는 듯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세대간의 대화의 단절은 아마도 공감의 단절에서 오지 않을까..

이 책은 지난 시절을 청춘, 처럼 회고하는 사람들이 읽어봐도 좋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 함께 읽어줬으면, 그래서 구세대와 신세대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서 *아빠의 청춘*을 같이 부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은 구세대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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