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한권을 읽고 나니 마치 고조선 그 이전부터 조선말까지 약 반만년의 우리나라 역사속의 그 한복판을 여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여행하고 온 느낌이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의 모습은 마치 고구려 장군같은 외모의 소유자인데, 그의 이력 및 저서를 보면 기자에서 문인까지, 두루 아우르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저서는 <한국사 여걸 열전>이라는 제목만 봐서는 마치 흥부전, 춘향전 하듯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여진 것처럼 보이나, 약 95권의 참고문헌에 근거하여 저술하여 그 내용이 정확성과 사실성이 역사서에 버금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기존의 역사서를 충실히 비교 참고하였을 뿐 만 아니라 저자 본인의 식견에 근거한 원본 비틀기식으로 재조명한 <한국사 여걸 열전>은 단지 이야기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야사로서의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 하다.




고조선부터 조선말까지 역사에 그 뚜렷한 족적을 남긴 여걸 27명의 비상한 한삶을 그린 이 책은 그 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져 왔던 여인들의 여걸기를 한권에 묶었다는 데 그 의의를 두고 싶다. 더군다나 그 여걸들이 시대를 풍미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 및 시대 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단지 위인전 성격이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도 충분하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여걸 이야기를 하면서 여걸보다는 그 주변인물, 시대배경 등에 더 치중한 부분이 몇 곳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읽다 보니 여걸전을 읽는다는 기분보다 한권의 역사서를 읽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걸인 웅녀를 기술한 부분에서 강화도의 마니산을 '마리산'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반가왔다. 작가의 우리나라 역사를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흔히, 강화도의 마니산은 여기저기에서 쉽게 마니산으로 표기한 것을 볼 수 있으나, 언어학적으로 머리라는 의미의 '마리산'으로 부르는 게 맞다. 즉 우리나라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는 의미다.)

27명의 여걸 중에서도 내 마음을 당긴 사람은 미혼모에서 여신으로 모셔진 고구려의 국모 유화부인,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여제 소서노, 가야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이국의 공주 허황옥, 미색하나로 서라벌을 휘어잡은 화랑들의 여왕 미실궁주,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 언니의 꿈을 사서 인생을 개척한 문명황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장군 연개소문의 동생 연수영, 불교중흥을 도모한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풍월 속에 살다간 송도의 명기 황진이, 삶의 아픔을 시를 승화시킨 허난설헌, 볼모의 신분에도 경제를 통해 부국을 추구한 여성 CEO 소현세자빈 강빈,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임윤지당 등이다. 그 중에서도 일신의 성공이나 제도, 윤리, 관습안에서 자리매겨진 여걸들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자유인으로 이해된 황진이의 한삶이 더 크게 다가온다.

위에 거론한 여걸들은 아주 상세하게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자도 있으나, 그렇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축소되어 있어 저자의 견해가 더 첨가되어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도미의 아내, 낙랑공주, 그리고 주논개 등은 그 이름까지도 전해지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견이 많은 것들도 있어 남성 위주의 역사관 속에서 여성들의 자리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여걸들에 대한 이야기의 서사가 주는 재미는 차치하고라도 주몽을, 추모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나, 사대주의 사관에 젖어있는 고려시절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각 부분에 대한 적절한 비판, 삼국시대로 규정지어져 잊혀져 가는 가야 및 부여의 존재에 대한 적절한 평가, 제외된 역사인 고조선, 삼한, 발해 등의 복원, 역사란 원래 승자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전제하에 역사 비틀어 읽기 등, 저자의 폭넓은 자료 분석 및 지식에 근거한 새로운 견해는 기존의 역사서를 적지 않게 접해본 내게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또한, 이 책은 여걸들의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 뿐 만 아니라, 더불어서 중국의 제후국이 아닌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당당한 제국인 우리나라의 주체성의 역사를 함께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는 것처럼, 어지러운 시대상황이 여걸을 만드는 거 같다.

남성위주의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이 기록된 자 헤아릴 수 없이 많건만, 여걸전이라 하여 이제 27명 정도 묶였으니, 어두운 시대와 불합리한 관습속에서 알려지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여걸들은 또 그 얼마이랴.

이 책을 통해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겨보며, 바야흐로 21세기는 여성들의 세상이라고들 흔히 얘기하는데 , 여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보통의 여성들이 제대로 위치지어지는 세상이 될 지는 훗날 역사서가 증명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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