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묵묵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왔을 뿐인데.
이제 타인들은 나에게 중년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 ‘딱지’는 꾸밈없는 미소의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아닌
채권자들이 채무자에게 붙이는 빨간딱지가 연상된다.
집안의 살림살이에 붙여지는 빨간딱지는 그 앞으로 나아가는 손길을 가로막는
접근금지의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우리 정도의 나이에게 붙이는 ‘중년’이라는 ‘딱지’는 채무자의 물건에 붙이는 빨간딱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제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그 정도에서 자족하고 더 이상의 전진은 멈추라는 제지의 의미가 읽혀진다.
나에게 있어 물리적인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굳이 중년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도 , 그렇다고 그래 나 중년이야 하면서 조금은 뻔뻔해진 얼굴을 치켜들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삶속에서 쉼표, 라는 단어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우리는 유난히도 보여지는 것에 연연한다.
일정한 기준을 세워 획일화하는 삶은 타자와 다른 삶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장 편리하고 쉽고 접근하는 숫자에 따라 우리는 중년으로 밀려가고 만다.
과연 나는 중년일까?
중년의 행복은 꼭 그래야만 하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규정하는 나를 일치시켜야만 할까?
여러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서 지난 이틀 동안 마주한 서정희님의 책.
우선은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초록빛 바탕의 쉼표,라는 글씨가 눈길을 끈다.
어라,,책제목이 멋스럽네..뭔가 있겠구나 하는 첫 느낌은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내내 기대에 차게 한다.
그러나, 적절한 사진을 곁들인 에세이류의 글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머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질 않았다.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
첫 장을 넘길 때는 나름 기대가 컸다. 인용한 글귀라든가, 사진들을 적절하게 버무린 솜씨도 좋았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건 아닌데.하는 기분이 들면서 4분의 3정도를 읽어냈을 무렵에는 슬쩍 빈정이 상하면서 책을 소리나게 덮고 말았다.
앞에서부터 내가 그나마 줄을 그은 부분은 저자의 글이 아니라 저자가 인용한 글귀였다.
서평을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염려는 있지만, 앞으로 나의 책장에서 이 책을 볼 일은 없을 거 같다.
마음에 남은 글 하나 옮겨본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었을 것을
- 어느 성공회 대주교(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글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