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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에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내버려둔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고대와 현대의 폐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진가를 인정받아 복원된 곳도 있고, 완전히 황폐해진 곳도 있다.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한다.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서문
버려지고 잊혀진 장소들에는 늘 이야기가 남아있다. 한때는 찬란하게 빛나는 장면으로 그려졌을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어 빈약한 뼈대만 남게 되고, 마침내 그마저도 부서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죽음은 두 가지 형태로 완성되는 것 같다. 물리적 형태의 상실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기억의 상실로. 사람 뿐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도 마찬기지로 그렇게 죽어간다.
이 책에는 세계가 흥망성쇠를 이루고 변화하는 동안 잊혀지고 버려진 40개의 폐허가 나온다. 한때는 세계의 중심처럼 빛나다가 쇠락하고 부서진 폐허를 총 5장에 담고 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예정된 수순대로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를 소개한다.
튀르키예의 뷔위카다 보육원, 폴란드의 자르노비에츠 원자력발전소, 노르웨이의 피라미덴, 포르투칼의 도나시카성, 아이티의 상수시 궁전, 덴마크의 루베이르크누드 등대, 이탈리아의 사메자노성.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에는 제목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들이다.
독일 '책의 도시'인 뷘스도르프에 남아있는 '붉은 군대'의 흔적, 문명의 중심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올라, '환희의 성채'가 맞은 인과응보의 역사를 남긴 인도의 만두, 지진과 홍수와 기근으로 주민들이 탈출하여 마침내 텅 비어버린 후에 영화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크라모, 한때 호황을 누리던 광산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뒤 쇠락한 스웨덴의 그렌게스베리, 뮤지션들이 많이 찾았지만 허리케인과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로 위험지역이 되어버린 서인도제도의 플리머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이아몬드로 한때 가장 부유했던 나미비아의 모래사막 등의 폐허가 나온다.
<시간의 무게에 잠식된다>에는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에 대한 내용이다. 미국의 샌터클로스는 1950년대 크게 번성했지만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던 66번 국도가 다른 도로에 대체되다가 1985년에 공식 폐쇄되면서 마을도 함께 몰락했다.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을 연상시키던 샌터클로스는 이제 ‘크리스마스 유령’을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찬란한 영광의 잔해>는 과거에는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장소들을 소개한다. 소금 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근처네는 '열차들의 무덤'이 있다. 영국이 추석 등의 천연자원을 운송할 목적으로 철도를 세우고 주유 환승역을 우유니에 건설했었는데 인공 질산염의 등장으로 초석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철도 산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유니 근처는 기차 폐기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성지순례와 노예 매매가 교차했던 수단의 수아킨. 노예 매매라는 무시무시한 평판으로 유명했으니 찬란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엿볼 수 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스벨트 섬에 세워진 천연두 병원과 이탈리아의 볼테라 정신병원, 여성을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집안의 재산처럼 여기는 우간다의 야캄펜섬.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영화 <코코>가 떠올랐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과정에서 폐허에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고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공간과 장소들은 부서지고 잊혀지면서 그런 점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소개된 폐허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1개 뿐이다. 폐허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 작가인 트래비스 앨버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폐허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