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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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질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수준의 예민도를 지닌 사람들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남들이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들을 쉽게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은 덜 예민한 사람들의 차이를 카메라와 마이크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덜 예민한 사람에 비해 예민한 사람들은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와 같다"고 한다. 당연히 남이 그냥 넘기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고 생각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의 에너지는 쉽게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작은 부분 하나도 지나치지 못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기질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도 쉽지 않고 쉽게 우울해하고 불안해질 수 있다. 만약 예민한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오랜 기간 동안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면 우울증이나 강박관념의 문제로 심각해질 수도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클로닝거 교수의 기질 및 성격 이론을 보면, 예민한 사람들은 위험 회피 기질과 사회적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위험회피 기질은 내성적이고 걱정이 많다.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조심성이 많아서 실수가 적은 대신에 지나치게 걱정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건강 염려증'이나 위험한 일을 피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민감성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에 민감해서 눈치를 너무 많이 보게 되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나친 죄의식을 갖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불안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해주고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있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이러한 존재를 '안전기지'라고 하는데, 애착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유아기 때 초기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긍정적인 대인 관계를 맺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유아기 때 그런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안전기지'를 만들면 된다. 책에서는 친구나 담당의사, 취미활동, 반려동물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취미를 가졌거나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예민성을 조절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도 어릴 때부터 불안도가 높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데다 늘 다른 형제들보다 부족하다고 혼내거나 지적하는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를 많이 봤으며 부모님의 잦은 불화, 수시로 터지는 오빠의 폭력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몸집이 작고 소심하고 불안감이 너무 높아서 어릴 때부터 수면 장애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택시에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났는데 택시운전사가 집 근처에 그냥 내려놓고 가버렸다. 혼날까봐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숨기고 있다가 저녁에 상처를 보게 된 엄마에게 혼이 났다. 아프지 않냐는 말 한마디 없이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라는 비난을 받고 밤새 혼자서 끙끙 앓았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그대로 갔다.

그때의 경험은 큰 상처로 남았고 그때부터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고립감을 느끼게 되니 극단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상처로 얼룩진 내 기억과 달리 어머니는 나를 응석받이로 키웠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다혈질에 기분이 쉽게 바뀌는 어머니는 기분이 좋을 때는 칭찬을 했다가 갑자기 화를 내고는 했는데 본인은 좋은 부분만 기억하고 계신 것 같았다. 지금도 다른 모녀와 달리 거리감이 느껴지고 친정에 가도 불편한 마음이 들어 잘 가지 않게 된다. 특히 첫째가 과잉행동으로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그때 의사선생님이 나의 어린 시절을 갑자기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일들을 쏟아내듯 말하다가 눈물을 흘렸는데, 통곡까지 해버렸다. 아마 그분이 처음으로 나의 상처에 대해 물어봐줘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쏟아버린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과거를 되풀이하다보니 우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죄책감이 늘었고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객관적으로 내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걱정이 정말 벌어질 일인지, 나와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정말 나에게 향한 것인지, 내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공정한지 등등에 대해. 지금도 가끔은 과거가 몰려와서 우울로 끌고 갈 때가 있지만 떨쳐내는 시간이 빨라졌다. 가족과는 관계는 여전히 편하지 않지만 그런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안한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되도록 빨리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안전기지'를 찾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해서 불안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러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대인관계의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에게서 받은 트라우마는 편안한 대인관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안정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에게 잘 맞습니다. 갑자기 화를 내고 폭력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편안한 대인관계를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편안한 대인관계는 자신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안전기지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안전기지를 만들 수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이 책은 1부 '불안편', 2부 '우울편', 3부 '트라우마편', 4부 '분노편', 5부 '실전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는 제목 그대로 '불안편'에서는 불안도가 높아서 걱정이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사례와 해결 방법을 풀어내었고, '우울편'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에 맞추며 살아오다가 인생의 목표를 잃고 우울증에 걸린 사례들이 나온다. '트라우마편'은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사례, '분노편'은 신체적인 부상이나 어린 시절 경험으로 인해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사례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실전편'에서는 예민한 성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즉 예민함을 장점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나쁜 기억 대신 좋은 기억을 만들고 좋은 생활리듬을 만들고 방어기제를 알아보고 가족과 분리 개별화를 하는 것!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다면 정말 좋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족 중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 있다면 시간을 내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봅시다. 좋은 기억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만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식사를 하거나 여행할 장소를 정할 때 예민한 분의 의견을 항상 듣고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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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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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가 빠져나간 장소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그 빈 곳을 채운다고..

그래서 사람이 많이 보여있던 장소에 귀신 이야기를 비롯한 괴담이 많은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사람이 많이 있다가 빠져나가는 장소들을 떠올려 보았다.

지하철역, 시장, 마트, 백화점, 공장, 놀이동산, 클럽, 수영장, 그리고 학교.

사람들이 있을 때는 평범하게 다가오는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을 빼고나니 낯설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를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가 등장한다. 그중에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 학생들로 북적거리던 학교에서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빈 교실과 복도, 화장실, 운동장이 남는다. 사람이 없는 곳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채운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한다. 한때는 사람이었던 때의 이야기를.


공포성장설 엔솔러지 『스터디 위X』은 오랜만에 보 학교 괴담으로 6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가 배경인 만큼 소설에는 입시 경쟁, 학교 폭력, 성적 서열화, 왕따, SNS의 폐해 같은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카톡 감옥>(윤치규)는 실제로 눈앞에 무서운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는 소설로 제목 그대로 단체 카톡방이 초대된 아이들에게 감옥같은 공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방에서 빠져나가면 끝없이 계속 초대하는 사이버폭력인 카톡 폭력인데, 그 방을 만든 아이의 말과 행동이 무섭다. 만약 영상물로 만든다면 카톡 소리와 빠르게 움직이는 카톡 화면 만으로도 굉장한 긴장감을 줄 것 같다.

<영고 1830>(권여름)는 성적 서열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명문고로 불리는 영고에 입학하지만 학 한년에 8반, 한 반에 30명이 있는 이 학교에서 학번 1830은 성적이 꼴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학생을 성적 순으로 학번을 매기는 이 학교에서 매년 1830번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슬픈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하수구 아이>(나푸름)는 첫 장면과 누군가에게 들은 장면이 섬뜩하다. 하지만 진실을 밝힐수록 섬뜩했던 장면은 슬픈 장면으로 바뀌어 간다. 하수구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누구이며 누가 그런 이름을 붙여줬을까.

<우리가 이곳에서>(은모든)은 몽환적이고 동화적이다. 수업 중인 교실에서 반장 윤재가 교사 미진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소설의 시작이다. 미진의 첫사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윤재는 왜 미진에게 자꾸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지...끝까지 읽고 나면 아련한 느낌이 든다.

<그런 애>(조진주)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는 솔희와 그런 솔희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SNS는자신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공간이면서도 가장 자신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공간이 아닐까.

책에 담긴 6편의 소설에는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과는 아주 많이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는 분위기가 숨어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과 그 시절의 학생들을 둘러싼 표피는 달라졌지만 공동체의 내부에 떠다니고 있는 긴장과 불안, 활기찬 에너지가 뒤섞인 그런 공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가끔 아이들과 교실에 남아서 놀 때가 있었다. 한참 수다를 떨면서 과자를 먹다가 우연히 시작되었던 무서운 이야기에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던 학교가 배경일 때가 많았다. 만년 2등이 1등을 옥상에서 밀어서 죽인 다음부터 나타나는 1등 귀신, 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비가 오는 날마다 다시 교실로 찾아온다는 학생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때 무서운 이야기를 참 좋아해서 많이 보고 들었는데, 이번에 내가 읽으려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스터디 위드X』가제본을 딸이 보더니 재미있겠다며 기말고사 끝나면 자기도 봐야겠다며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뻤다. 그리고 열일곱 살이었던 내가 잠깐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구석이 드러난다. 불편해서 드러내지 않는 어두운 구석의 이야기는 괴담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이렇게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라고.

#창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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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나만의 걸작을 만드는 컬러링북
데이비드 존스.데이지 실 지음, 경규림 옮김 / 씨네21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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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구스타프 클림트》, 《아서 래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르데코 패션》 등 총 다섯 권의 책으로 나만의 걸작을 만들어보는 컬러링북 시리즈!

내가 하니포터 서평단으로 받은 책은 황금빛 장식성이 눈부신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가 수록된 컬러링북이다.

몇 작품이 들어있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을 비롯해 새로 알게 된 작품까지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다. 황금빛으로 찬란이는 아름다움, 그 속에 깃든 사랑과 슬픔.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선보인 구스타프 클림프는 아르누보(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장식 양식으로 새로운 예술을 뜻함)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다.

클림프의 작품에 대해 언급할 때면 찬란한 황금빛과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과시적인 표정의 여인들과 너무 화려한 색채와 장식에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선호하지 않는 작품을 그리는 화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년 전엔가 독서모임에서 화가들의 그림을 설명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에서 아주 조금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영화 <우먼 인 골드>를 재미있게 본 경험이 더해져서 이번에는 한 장씩 자세히 넘기면서 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선호하는 색감과 스타일의 그림 하나를 만나게 되는 행운까지 누렸다 ㅎㅎ

제목은 <물의 요정>(은물고기)로 지금 계절과 어울리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각 장마다 작품설명과 채색 가이드가 수록돼 있어서 주변에 있는 색연필, 수성사인펜 등을 이용해서 어려워보이는 작품 컬러링에 대한 장벽 진입을 낮췄다. 그래도 좀 복잡해보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질 때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무념무상으로 컬러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이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 <게를라흐의 알레고리를 위한 여름 삽화> <푸른 강 위의 마을> <금붕어> <물의요정> -부터 색칠해보고 싶다.

혹시 좋은 작품이 나오면 한 장씩 뜯어낼 수 있으니 벽에 걸어두고 나만의 컬러링 작품을 감상해볼지도 모르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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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 - 기후위기 탈출로 가는 작지만 놀라운 실천들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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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고 황당해 보이는 생각들이 지구를 구한다!"


지구를 구한다는 씩씩한 말처럼 이 책은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가지'를 담고 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기후 위기에 빠진 지구를 살린다는 의지는 너무 순진하고 해맑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기 위한 개인적인 실천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친환경 제품이나 텀블러 사용, 물건 재활용을 하고 자동차 보다는 도보로 이동하면서 '나는 환경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 만족하여 지구를 살리기 위한 본질적인 고민보다 지엽적인 부분만 강조하여 실제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었다.


더럽거나 위험한 물질에 노출되지 않으며 그러한 장소에서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연관성을 인지할 수 없다. 법적인 규제와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환경 오염은 반복되면서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기에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만 실제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개인의 노력은 어떠한 소용도 없다는 냉소로 흘러가면 지구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씩씩한 용기는 개인적인 실천과 공동체의 의지가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따뜻한 희망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오랫동안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환경 책(『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물건10』 『지구인의 도시 사용법』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여우와 토종씨의 행방불명』 등의 저서가 있음)을 쓰고 있는 박경화 작가는 2019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과 2015년 'SBS 물환경대상 '두루미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기후위기, 에너지 고갈, 넘쳐나는 쓰레기 등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환경문제는 너무나 무겁고 막막해요. 이러한 문제 뒤 이어지는 갈등과 불평등 문제도 복잡하지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무기력하게 걱정만 할 수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서 지구촌 곳곳에서 행동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요.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작가의 말

 


 실제로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방법들은 기발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생각에서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 방법들이다. 크게 10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각각의 챕터에 사례와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각 챕터의 마무리 장에는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생각 키우기>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10가지 방법은 어려운 실천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소와 방식으로 가능한 방법들을 담고 있어서 부담 없이 들어가서 동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고 있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잘 알지 못했던 '도시광산' '공정무역' '탄소중립' 부분은 눈여겨 읽어볼 만 하다.


특히 7장 '도시광산'에서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전자제품들을 만드는 핵심 광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채취하거나 생산하여 판매하는 광물이 그 나라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과 보호 장비 하나 없는 굴속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으면서도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는 빈곤의 굴레를 볼 수 있다.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네 살 어린아이도 광물을 골라내거나 땅을 파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값싼 노동력이며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

4장 '도시재생'은 지방에 빈집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고 5장 '생태도시'에서는 지속가능한 도시는 결국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인구 증가로 도시가 무분별하게 확장되거나 인구 감소로 도시가 쇠퇴하면서 주거 환경이 노후화디고 열악해졌을 때, 또는 산업 구조의 변화로 건물이나 시설물의 용도가 달라졌을 때 등 다양한 이유로 변화가 필요해지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여 경제, 사회,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 개발 사업이에요. 또 도시의 주요 건물이나 거리를 새롭게 꾸며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10

 

 

마지막 10장 '탄소중립 사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년 간 놓쳤던 부분이라 더욱 시급하게 다가온다. 날마다 전기를 쓰고 있으며 냉방과 난방 등 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략 30년 후인 2050년 탄소중립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노력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머나먼 미래처럼 들린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은 무역 경제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빠르게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이다. 한국형 RE100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했지만 뚜렷한 방안이나 결과가 없이 지나가 버렸다. 제조업의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엄청 시급한 문제 아닐까 싶은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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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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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내버려둔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고대와 현대의 폐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진가를 인정받아 복원된 곳도 있고, 완전히 황폐해진 곳도 있다.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한다.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서문


버려지고 잊혀진 장소들에는 늘 이야기가 남아있다. 한때는 찬란하게 빛나는 장면으로 그려졌을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어 빈약한 뼈대만 남게 되고, 마침내 그마저도 부서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죽음은 두 가지 형태로 완성되는 것 같다. 물리적 형태의 상실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기억의 상실로. 사람 뿐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도 마찬기지로 그렇게 죽어간다.

이 책에는 세계가 흥망성쇠를 이루고 변화하는 동안 잊혀지고 버려진 40개의 폐허가 나온다. 한때는 세계의 중심처럼 빛나다가 쇠락하고 부서진 폐허를 총 5장에 담고 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예정된 수순대로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를 소개한다.

튀르키예의 뷔위카다 보육원, 폴란드의 자르노비에츠 원자력발전소, 노르웨이의 피라미덴, 포르투칼의 도나시카성, 아이티의 상수시 궁전, 덴마크의 루베이르크누드 등대, 이탈리아의 사메자노성.​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에는 제목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들이다.

독일 '책의 도시'인 뷘스도르프에 남아있는 '붉은 군대'의 흔적, 문명의 중심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올라, '환희의 성채'가 맞은 인과응보의 역사를 남긴 인도의 만두, 지진과 홍수와 기근으로 주민들이 탈출하여 마침내 텅 비어버린 후에 영화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크라모, 한때 호황을 누리던 광산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뒤 쇠락한 스웨덴의 그렌게스베리, 뮤지션들이 많이 찾았지만 허리케인과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로 위험지역이 되어버린 서인도제도의 플리머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이아몬드로 한때 가장 부유했던 나미비아의 모래사막 등의 폐허가 나온다.

<시간의 무게에 잠식된다>에는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에 대한 내용이다. 미국의 샌터클로스는 1950년대 크게 번성했지만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던 66번 국도가 다른 도로에 대체되다가 1985년에 공식 폐쇄되면서 마을도 함께 몰락했다.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을 연상시키던 샌터클로스는 이제 ‘크리스마스 유령’을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찬란한 영광의 잔해>는 과거에는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장소들을 소개한다. 소금 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근처네는 '열차들의 무덤'이 있다. 영국이 추석 등의 천연자원을 운송할 목적으로 철도를 세우고 주유 환승역을 우유니에 건설했었는데 인공 질산염의 등장으로 초석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철도 산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유니 근처는 기차 폐기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성지순례와 노예 매매가 교차했던 수단의 수아킨. 노예 매매라는 무시무시한 평판으로 유명했으니 찬란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엿볼 수 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스벨트 섬에 세워진 천연두 병원과 이탈리아의 볼테라 정신병원, 여성을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집안의 재산처럼 여기는 우간다의 야캄펜섬.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영화 <코코>가 떠올랐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과정에서 폐허에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고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공간과 장소들은 부서지고 잊혀지면서 그런 점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소개된 폐허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1개 뿐이다. 폐허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 작가인 트래비스 앨버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폐허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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