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냉난방비 예산과 관련한 기사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최근 만나는 자리에서 푸념 하듯 아버지를 주제로 얘기를 하고는 하는데, 딱히 모아둔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노후 대비도 없는 실정에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아버지 본인 역시도 대단히 노년에 일할 거리에 자신을 잃은 상태이고.. 나는 사안에 느끼는 부담에 대해 토로했다. 친구 A 역시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최근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드렸는데 거기서 받은 대우가 사람에 대한 자존심을 찾기 힘든 곳이었다며, 그런데도 그마저도 '잘려서' 지금은 집에 계신다는 얘기를 했다.


대단히 막연한 개념이지만 '아버지 세대'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다면 일평생 부족하지 않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해왔을 뿐인데 그 대가치고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세상은 이제껏 뭐했냐며 마구 다그친다. 열심히 살아온 건 경제적으로 무능을 대변하고, 그 결과는 죄에 대한 엄벌로 나타난다. 집안 분위기는 건조해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서로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주게된다..


꽃보다 아름다운 노년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플라톤의 <국가>, 그 살벌한 정치론으로 무장한 세계에서도 노년은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휴식으로 기억된다. 듀런트의 비판을 빌리자면 '그럼에도 플라톤은 옳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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