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네 서점이라는 어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잡지가 있어 근처 서점에 들른 나는 이내 책방에 해당 잡지를 찾을 수 없어 주인분에게 물었고, 들여오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에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아마 으레 '들여오도록 해보겠다'는 립서비스를 들었던 거 같다. 하겠다도 아니고 '해보겠다'는 어휘를 체감하지 못했던 건지, 나는 멍청하게도 몇일 뒤 해당 서점을 다시 찾아 일전에 말한 잡지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그런 얘기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반응이었다. 그뒤로 돌아온 나는 그냥 구독을 결정했다.



 오늘 밀린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내'(이 단어를 수도권 친구들 앞에서 쓰면 촌놈이라 놀림 받는다)에 있는 서점을 들렀다. 수험서 같은 경우 가격도 만만치 않아 덜컥 사기에는 무리라 아무래도 조금은 훑어봐야 해서였다. 좋든 싫든 정가제 영향도 있었고.


 어제, 원래는 야간일이 끝난 아침에 가볼 요량으로 전날에 영업시간을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적였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소위 '까는' 얘기가 있어 읽어보았다. 주차권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였지만 적잖이 기타 불만이 있던 분들의 댓글이 연달아 달린 걸 보니 문제가 있기는 확실히 있어 보였다.


 이날 가보니 확실히 변화를 느꼈다. 아니, 내가 평소에는 그렇게 의식적으로 주목하지 않아 평소에도 그랬는지 몰라도, 계산을 치르는데 손님마다 주차권에 대한 이야기가 꼭꼭 체크되었다.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관은 계산이었다. 값을 치르고 양도되는 물건을 찍고는 매대에 툭툭 던지는 점이나 거래를 증명하는 서명을 묻지도 않고 자기가 알아서 결제를 해버리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주목받지 않기 힘들었다.



 메모선장이라는 분의 블로그에 올라온 '친절하지 않은 정도는 괜찮다'(http://tirips.egloos.com/5878186)는 내게 가히 충격이었다. '종사'의 의미에서 당연히 친절해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개발살 내는 내용이었다. 


나는 서비스업이라도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다른 곳에 비해 친절하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거나 다른 곳을 이용하겠다고 발걸음을 돌릴 수는 있지만 천하에 빌어먹고 저주받을 곳이라고 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로봇이 아니고 인간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오늘 아침 급히 집을 나오다가 새끼발가락을 모서리에 심하게 박는 통에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르고, 어제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와 심란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라고 딱히 그걸 헤아려줄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의 심리 상태가 내 권리나 심리 상태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면 그 나름의 사정이 존재해도 괜찮다. “유리가면"의 츠키카게 선생이 연기 중에 우는 마야를 보고 윽박지르듯이 ‘가게에 들어서서 제복을 입은 이상 넌 인간이 아니라 웨이트리스야! 가면을 깨뜨려선 안 돼!’라는 논리는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지만, 서비스업은 딱히 사상과 진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니까 “넌 친절하지 않으니까 불친절하기 짝이 없군!” 하고 매도할 수는 없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지도 않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중립지역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상종 못할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남들은 다 내가 요구하지 않은 것까지 주는데 넌 왜 내가 요구하지 않은 것을 주지 않는 거야!”라고 요구하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경우가 줄어들고 서로 좀 무뎌져야 모두 덜 피곤해지지 않을까?


출처:친절하지 않은 정도는 괜찮다


 기억나는 글이 있다. 파업 현장에서 소위 '짱깨'를 시켰는데 배달이 오지 않자 항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홍세화 씨는 한 사회학자의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싸우는 과정 자체가 이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풀었다는 점이나 대단히 두서 없는 단편이 되었지만,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서점에 대한 발전적 논의라든지 개인적으로 느꼈던 불쾌에 대한 응당한 조치는 어차피 서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루소에 상응하는 '보편 서비스'를 감사할 오지랖을 부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보편의 입장에서 오히려 감사 자체가 역설적이지만 말이다.)


 먹고 사는 입이 늘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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