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소유권. 벌써 짐작되지 않는가? 공공은 성격이고 소유는 권리다. 존재의 차원에서도 역시 공공의 권리, 그러니까 공공권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성과 소유권이라는 차원이 지닌 차이를 흘러 놓치게 하진 않는다. 둘의 입장은 하나의 입점에 놓이게 된다. 공공성. 그것은 환경에 따라 놓이게 되는 공공의 성격이고. 소유권. 그것은 자신에 입각하는 장전적인 소유 권리인 것이다. 몰지각을 가르는 차이는 거기이다. 공공은 환경에 의해 주어진 것이고, 소유는 자신을 장전하는 것. 통신사 대리점 앞에 이런 현수막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해지 위약금 100% 최대 보장." 해지 위약금의 완전한 보장이 아닌 100%로 최대 보장. 여기서 얻는 가장 정직한 교훈은, 논리적 실증성의 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당하는 놈이 바보. 마이클 하트는 바로 여기에 "묵시록의 두 얼굴"을 이야기한다. 전혀 자각하지 못했던 가치를 통각하고 일깨우는 일로써 말이다. 그것은 "삶가치(value of life)를 유일하게 유효한 가치평가의 척도로서 부과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2009년 12월 나는 제15차 UN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갔다. … 공식 모임에 참석한 것은 아니고, 공식 참가집단들의 행위(더욱 중요하게는 그들의 행위 부재)를 겨냥한 회의장 바깥에서의 일련의 시위 행동에 참여했다. … 반자본주의적 사회운동과 기후변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운동 사이의 관계가 … 나로 하여금 시위를 구성했던 주요한 두 부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론적인 고찰을 하도록 만들었다.
생태주의는 인간이 한계를 모르는 자만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그러니까 환경 친화적인 생태적 인간 실현), 사회주의는 인간이야말로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초극성을 주장하기에 둘은 '보이기에 따라' 너무도 다른 노선이라는 것이다. 즉 "따라서 한 영역에서는 보존에 대한 요구와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논의의 주를 이루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다른 영역에서의 논의는 무한한 창조적 잠재성에 대한 찬사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부의 관찰에서 벗어나 주변 그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그곳에 '모였다'라는 행동 자체가 "삶가치를 유일하게 유효한 가치평가의 척도로서 부과"되는, 그러니까 "생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분할선이" 흐려지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느끼게 되는 감각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산업생산이 중심이었던 자본주의 경제에서 비물질적 혹은 삶정치적 생산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의 획기적 전환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 세계라고 명명되는 형태가 봉착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1. 그 자체로 운행함으로써 존재하는 내적인 모순이다. 생산. 그것은 "많은 비물질적 생산물들은 개방된 방식으로 공유될 때에만 그것이 가진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기능한다. 어떤 생각이나 정동이 당신에게 가지는 유용성은 그 생각이나 정동을 나와 공유한다고 해서 감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유함으로써만 유용해진다." 학업과 취업의 상관 고리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진행되는 현행에선 "하나의 강력한 모순이 … 심장부에서 부상하고 있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자본주의적 축적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사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 사이의 모순이 그것이다." 치료제와 판권은 그 사이의 긴장감을 표현한다. 널리 이로운 것은 돈이 된다는 사실의 측정이고, 그것이 생산의 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아마존 식물에 대한 토착민들의 지식과 그것의 약효 성분을 초국적 기업이 그 특허권을 획득하여 사유재산이 되었다. 그 결과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다.
2. 그리고 그 현행성이 "누구도 측정할 수" 없는 "파괴되는 삶형태들"을 결정짓는다는 점이다. "방글라데시의 절반이 물에 잠기는 것, 에티오피아의 영구적인 가뭄, 이뉴잇족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파괴되는 것이 얼마만큼의 액수에 해당될 것인가? … 일하다 손가락을 잃는 것에 대해 당신이 얼마만큼의 돈을 보상받을 수 있는지, 눈이나 팔을 잃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의 돈을 보상받을 수 있는지를 산정한 보험회사의 보상기준표를 읽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혐오와 분노가 일어난다."
따라서 그는 각자의 노선을 구축하는 사회주의와 생태주의라는 "두 형태가 공유하는 이 두 가지 논리", 그러니까 "공통적인 것의 두 형태가 소유관계에 저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합리성이라는 전통적인 척도에도 저항하는 것 … 이들 두 외형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공통적이고 공유하는- "기반이 된다." 그는 우리는 산업생산이 중심이었던 자본주의 경제에서 비물질적 혹은 삶정치적 생산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의 획기적 전환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 그러니까 그 둘은 "생산과 재생산의 전통적인 분할이 사실상 깨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일단 인식하고 나면, 한 영역에서는 보존을, 다른 영역에서는 창조를 요구하는 것이 실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