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에 대한 사형 폐지입장을 이야기하기란 간단하다. 우선 인권을 언급하고, 세상만사가 오로지 법 관찰에 의해 완벽하게 관철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디어에서는 사실은 범인은 따로 있거나 우발적인 사건인데 죄 없고 가난한 사회적 희생양들은 탐색하기 마련이다. 이런 그런 장면들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주제를 (가령 '7번방의 선물'에서 딸을 호명하는 신체 없는 목소리 부분... 나는 여기서 웃었다가 친구들로부터 질책과 원망을 샀다) 전달하지만, 사실을 놓고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 실은 부당함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눈이 부신 대신에) 눈물겨운 헌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쏘우'에서 직소가 그렇지 않은가? 삶이 따분하지 않았느냐고.) 그저 게임을 원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 데드맨 워킹은 다소 따분하다. 그래서 추천한다. 이 영화는 진부하고 무책임하다. 사형수도 살리지 못하며, 피해 가족들의 상처를 충분히 소화해내지도 못한다. 수녀는 오로지 그 중간에 서서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또 아파할 뿐이다. 사형이 집행된 뒤 사형을 강고하게 원한 유가족이 사형수 장례식에 찾아온다. 같은 교인으로서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수녀라는 사람이 살인자인 그를 보며 아파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지 그녀의 믿음을 책망한다. 그리고 그녀는 대답한다: 그건 노력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