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비데의 노트를 통한 '공산주의는 어디에'라는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공산주의 이념은 도대체 어디쯤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 어디에서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지배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출구를 찾아 나갈 수 있는가?" 이것은 인문학에 대한 우파의 한탄들은 그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좌파는 도대체 어디에서 이 목소리의 현실을 찾을 수 있는가? 박힌 사물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사물로서의 텍스트. 우파는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라." 우파는 요구한다. "현실을 보여라." 지시하는 대상, 지시되는 사물 모두가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서) "현대성의 선언(이) 그 자체로 다른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실재적 대립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가령 "자유! 평등! 소유!, 그리고 벤담"으로 제시되는 마르크스의 부르주아의 양식성은 이론적 부합성을 근거로 제시되는 이념이어선 안 되는 것이다. 공리라는 산술 문제에 '판단'이라는 요청 문제는 인지의 부조화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것이 강조된다.



 현대성의 선언은 그 자체로 다른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재적 대립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주목되는 '곳/것'은 어디인가? "현대계급구조가 전제하고 있는 메타구조는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를 이야기하는 상품생산논리이다. 계급구조는 앞서 말한 바대로 이러한 상품생산논리를 전제한다." 지시하고, 지시를 가리키며 사라지게 되는, 바로 -여기- 손에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총체적 현대 세계는 체계라는 용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장갑 낀 손으로만 우주로 뻗어갈 수 있을 뿐이며, 그 장갑은 조금이나마 자신이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할 자신의 민족이다.... -예이츠(루크 기본스, 「국민의 손님」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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