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것은 존재의 대상인가? 대상의 존재인가? 이런 물음에, 지난 역사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일관된 대답을 해왔다. 지난 세기 국가는 개인의 물리력을 뛰어넘은 가공할 폭력을 (개인이 상상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행사했다. 국가는 모든 개인을 우습게 초월했다. 개인은 국가가 아니었다. 국가가 개인이었다. 국가의 유적 본질은 개인이었지만, 국민은 그런 개인에 선행했다. 국가의 역사란, 오로지 국가 없는 미래를 지시하는 그 무엇 이상도 아니었다. 국가라는 모든 현장에 폭력은 국가가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였다. 국가 생활 세계의 가능성은 개개인의 불가능성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가진다. 유럽은 여전히 분자가 아니라 분열이다. 환대는 여전히 막연한 상상력이다... 국가는 언제나 옳았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새로운 과거'가 운동한다. 과거는 그곳이 여전히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새로움은 그곳이 지금을 의미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국가의 운명은 어떠한가? 국가는 '어떠할' 수 있는가? 논자는 이 물음을 구성하기 위해 아나키즘을 활용한다. 가령



 바쿠닌은 계획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꿈꾸던 모든 것을 창조한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즉시 내가 만든 모든 것을 다시 허물어뜨리기 시작할 것이오." 



 논자는 아나키즘의 "이러한 운명"들에서 (일종의) "텅 빈" 제스쳐를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텅 빈 기표로 남겨져 있는 것처럼 국가 또한 텅 빈 기표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 그 자체를 악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성으로 열려 있는 것으로 이해할 때, 국가의 성격 또한 변화 가능할 것



 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이다. 논문은 이렇게 '국가 이후 국가'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 지난 역사의 민주화에서 언제나 '타협'의 대상이었던 것이 국가였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논문은 《진보평론》(53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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