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 발제성만 읽었다. 해당 논의는 푸코의 '담론의 질서'를 통해 종횡하는데, 그 의미를 "'사회로부터의 담론'이 아니라 '담론으로부터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련의 정치 형태를 보면 정치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흥미롭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척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유되는 것으로부터 공통되게 느낄 수 있는 '웃음'이라는 콘텐츠다. 오유는 진보고, 일베는 보수라는 이 분법이 그렇게 나누면서도 동질적이게 묶이고 뒤섞이며 헝클어지는 것은 웃음이다. 서로는 서로를 웃음으로, 즉 도착적이고 강박적인 웃음 대상으로 삼는다. 쌍방 모두 일그러진 표층 위에 존립한다. 이것은 하나의 외상적 질료인데, 입식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희생을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이다. "웃긴가? 그럼 너도 이젠 우리로 불릴 수 있다. 맘껏 즐겨라. (단! 네가 불쾌해 하지 않으리라는 확약 아래에서.)" 이제 정치의 사활은 오직 자극에 대한 반응, 즉 자세에 뒤따르는 것이다. 정치는 오직 '쾌/불쾌'의 척도이다. 여기서 통용되는 유일한 원칙은 단 하나이다. "웃겼는가?" 근래의 '밥 노스' 사건은 그 불분명하게 부유하는 덩어리를 표층한다. 일상과 일베의 구분과 경계는 옅어져 간다. 웃음은 내면의 심층을 파고들어 잠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