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에서의 맑스가 이야기하는 시초축적으로서의 부채체제를 창출하는 국가 폭력 상황과 노동의 이중화라는 그 의미에서 논란이 되는 민영화를 읽으면 어떨까? 논자는 '마녀사냥'을 통해 국가 폭력 상황에 노출되고, 그러면서 마녀를 사냥하는(국무를 수행하는) '국민'이라는 주체적 경험을 논의하는 페데리치를 주목한다. 그는 페데리치가 유럽 세계에서 마녀사냥이 가지는 의미를



 "종교개혁으로 인한 분란 이후, 유럽 통합의 첫 사례이자 새로운 유럽 국민국가의 정치에서 최초의 통합의 장이었다"
















라고 분석하는 것에서 '자본'을 조직하는 국가의 '폭력'과 그러한 폭력이 규정하는 생활세계를 내면화하는 것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자본으로 점증하는 세계에 주목한다. "널리 알려진 시초축적의 요소는 농촌주민으로부터의 토지수탈, 이른바 '엔클로저'이다." 국가가 폭력으로 삶을 영위하던 기존의 생활세계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생활방식으로부터 분리되고 유리된 농촌주민이 노동 자원인 실업자가 되어 그들 스스로 적극적이게 임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그가 한 말이지만, 장하준 씨의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소제와도 같다.① 논자가 주목하는 맑스의 진단에 따르자면, (국가) "폭력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 잠재력"인 것이다. 생존이 삶의 전제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절박이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과거, 그러나까 냉전으로 질서를 재빠르고 단단하게 재편해야 했던 미국으로서는 도무지 불확실성에 전적으로 내맡겨진 '화폐의 요사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달러는 그냥 종이이거나 금속일 뿐이며, 은행예금은 장부에 기록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채무에 대한 사실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지나간 시간을 돈에 각인하는 것, 기억을 오늘로 현재하게 하는 것, 이런 '소리'가 어떻게 시장의 확실성을 가져다준단 말인가? 심지어 그런 관계의 문제보다 더욱이 곤란하게 하는 것은 '쌓아올린' 자산이 하루아침 만에 '폭락'할 수 있다는 '허섭'함이었다. 더구나 '대공황'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실감했던 미국이었다. 따라서 달러를 고정 가치인 금으로 묶음으로써 실물성을 보장하는 태환 정책이 실행되었다. 물론 (허턴의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라는 말처럼) 오늘이 증명하듯, 그 '실험'은 처절하게 실패(를 통해 성공)했다. 더 없는 확실성을 얻은 달러는 마구 찍히고 뿌려졌고, 그것이 스스로를 "공중에서 폭파"시켰을 때,②  미국은 '달러의 의미를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지급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지급의 중단 또한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실험은 "처절하게 실패(를 통해 성공)했다."


 "미국의 부채는 기본적으로 전쟁부채이다. 미국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군사비를 지속적으로 지출하고 있다. 군사비지출은 산업정책의 바탕을 이룰 뿐 아니라 예산에서도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 (그러니까) 몇 시간 안에 지구상의 어느 곳에나 정확히 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미국의 군사력이 세계의 통화시스템을 달러를 중심으로 단단히 묶어 놓는 능력


이라는 것이다. 















 다시 생활 영역에 관한 '부채체제'를 따라가 보면, 논자는 랏자라또의 논의 흐름을 통해 파악한다. 자본의 생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채 상황을 낳는다. "부채는 피고용자와 국민 전체의 현재 시간표를 전유할 뿐만 아니라 비연대기적 시간, 곧 각자의 미래와 사회의 미래를 통째로 선취한다"는 랏자라또의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신용화폐는 (그것으로는) 금속이거나 종이이거나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신용화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의존적이지만) 그것 자체로 이미 '가격'을 내용으로 뜻한다. 따라서 신용화폐는 자신이 의존하는 대상성에 대해 "무관심"해 진다.③ 신용화폐는 이제 스스로가 무한한 '익명성'에 도처한다. "그것은 경험의 빈곤(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가난은 경험이 아니다. 가난은 인지하고 파악하는 것이다. 당신은 돈을 벌어야 하는 존재다. 화폐는 모든 것이다. 총괄하고, 그것으로 하여 '의미롭게'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대상을 연소하고 파괴함으로써 대상을 새롭게 쇄신시키는 불을 각별히 주목했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당시 그의) '통일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좀 더 경이로운 physis 경험이 체험된다. 



 그는 금이(이 경우 금은 돈을 의미하는데) 모든 것과 교환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바로 이러한 점에서 불을 금에 비유한다. … 전체 우주에 대해 하나의 통일적인 화폐가 존재한다면 우주는 모든 존재들을 수용하는 일종의 거대한 상품보관소, …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원에 지나지


않다는 경험이다.④ 논자(조정환 씨)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의 실존 자체가 곧 채무로 된 것이다." 우리는 바타이유의 정식을 다시금 (현대적인 감각으로 너끈히) 재정식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⑤


 "우리는 똥과 오줌, 기저귀 사이에서 태어난다."⑥
















 따라서 논자는 (짐멜이 표현하는) 화폐의 '비천함'과 그 허접성을, "특이성들의 보편적 공통되기로, 보편적 상호부조로" 만들 것을 말한다. (논자가 하는 논의는 아니지만, 익히 지젝을 읽어온 독자로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처럼- 그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시간이 늦어 성급히 글을 맺는다) 민영화는 자본이 내재한 폭력 상황을 스스로 종식하는 것, 즉 "당이 자살"하면서 "버그"적으로 찾아오는 "다시 한 번 가장 순수한 형태의 대상 a"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후로 논의를 더 이어가고 싶지만 벅차다..






① 『그들이 말하지 않는...』

②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Ⅱ(박영균 씨의 「맑스의 국민경제학...」을 통해 재인용)

③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④ 클라우스 헬트, 「자연의 발견」

⑤ 유기환, 『조르주 바타이유』

⑥《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Y》(SBS)의 '나체 남성의 대변기(記)'는 그런 의미에서 다단하다. 물론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둘러싼 소견들을 통해서 (물론 이것이 일정 곡해라고는 하지만) 프로이트의 'sex or nothing'을 다시금 느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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