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라는 삶의 터전을 가진 이들에게 국가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 전쟁이라는 의미를 오늘날 파악하기 위해 시도되는 지표라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통계 번역의 문제는, 거기에서 정작 의미를 던져줄 이야기라는 사서적이고 서술적인 측면이 결핍되면서 (아렌트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국가 주도의 '게임' 전략 문제에서 더 벗어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결과적으로 행동을 재고하는 질문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에서 부수되는 피해의 양적이고 실적인 문제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다듬어 이야기하자면, 전쟁을 실행하는 감각적 문제는 증발하고 그 공백은 '계산'이라는 인식 차원으로 메워지는 것이다. "문제해결사들은 사고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산을 했다." ① 전쟁은 항상 실익이다. 오직 가능한 손해는 죽음인데, 다행히도 이때의 죽음은 손해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당 논문은 그 뜻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전쟁에 대한 입장은 기존의 견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제시하는 서술 측면이 남다르다. 논자는 "밀고 당기는 전세 속에서 지역의 점령 주체가 여러 차례" 바뀐, "주민들은 이것을 '톱질했다'라고 표현"하는 지역을 조사하면서, 특이하게도 논문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인공을 주변에서 구성한다. "주인공 김창순(가명)만 구술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미 오래 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이 연구는 김창순의 생애를 매개로 이 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구술자 22명의 한국전쟁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주인공 한약방 주인 김창순은 1901년에 태어나서 1969년에 사망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식민지·해방·한국전쟁을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5개의 국적을 가졌다. 대한제국, 일본제국, 인민공화국, 유엔 군정, 대한민국이 그가 살았을 때 차례로 속했던 '국가'들이었다. 



 역시 본 글에서 그 기구한 사연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글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전쟁이라는 인재(人災)가 '운명'으로 회고되고 신의 섭리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자들의 모습에서 전쟁에 대한 국가의 보다 선명한 그림을 보게 된다.






엄기호-신자유주의의 법치주의와 정치/삶의 형태의 재구성


① 해당 책에서는 생각이 아니라 '판단'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원어가 없는 탓에 원본에 접근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렌트의 개념을 '사고'로 읽었다.



※논문은 《역사비평》(93호)에 해당합니다.

※논자가 지은 책으로
















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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