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시 '종북'(자세하게는 김일성 연구에서 [맥락없는] '표현'들이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한홍구 씨의 글이다. 그의 책인 『대한민국史』를 차용하자면 "미치도록 잡고" 싶었지만(3권), 간첩"의 짜릿한 감격은" 없었던(1권), 우리 '한국현대사의 그늘'을 조명하고 있다. 그는 남파공작 사례들을 조사하고 종합하면서 이것을 "분단시대의 남과 북은 평범하면서도 고귀한 인간들에게 너도 나도 역사의 흙탕물에 과감히 뛰어들 것을 요구했"고, "여기에 뛰어든 사람들, 특히 남파공작원들은 역사의 격랑에 (…) 본인의 동의를 전제로 한 … 숭고한 허망함"이라고 표현한다.
1961년 7월 육상으로 침투한 김중종은 국군 8사단 부대마크를 달고 나왔으나, 8사단은 두어 달 전에 다른 부대로 교체되었다. 한국에 쿠데타가 났는데 부대 이동은 없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적정 탐지를 책임진 부서에서는 전방은 미군 관할이니 부대 이동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중종은 이 마크 때문에 수사 받을 때 계속 놀림을 받았다고 분개했다. 게다가 자신이 내려오기 전날, 인민군 쪽의 정찰조가 남쪽에 침투했다가 발각되어 남측 지역에 비상이 떨어졌는데 당 쪽에서는 이런 일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냥 범의 아가리 속에 들어간 꼴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논리적인 이유'에서 쌍방이 간첩을 생산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테러"를 가했던 상황을 "슬프게 보내고 슬프게 맞이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례와 떨어져선 읽히기 어려운 글이기에 너무 많은 것을 여기서 담기보다는 관심이 있다면 일독하는 것을 권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일제의 사뭇 다른 풍경을 보너스로 얻게 된다.)
※논문은 《역사비평》(94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