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시장'은 내게 있어서 그리 낯선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익숙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억지이기에 적당히 '되도록'이라는 표현 없이도 이용하게 되는 곳이 내게 있어서 시장이라는 곳이다. 정말이지 더도 덜도 말고 '장을 볼 필요가 있기에' 있는 곳, 그곳이 시장이다. 그러나 '되도록'이라는 의미에서 재래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시장은 하나의 환(등)상이다. (현대판 아케이드라고 할까.) 매체를 통해 부지기수로 생산되는 시장에 대한 처절한 담론들은 외상적인 충격의 경험으로 되돌아오고야 만다.
'손님을 식구 대하듯'(물론 식구는 자신을 포함하는 의미인데)이라는 표어에 충실한 나머지 정말 '나도 먹을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로 '가정적인' 위생 상태와 '버리면 아깝다'는 가계적인(?) 씀씀이. 기침한 손 그대로 (손맛이 살아 숨을 쉬는 그런) 찬을 집어 내오던 국밥집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여기에 대형마트에 대항하는 가치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시장의 '인심'이라는 어용도 얼마나 '푸짐한지'를 알고 보면 당황스럽다. 불친절마저도 '인심'이고 (결정적으로는) '그것이야말로 인간미'이기 때문이다. 아마 인정(人情)을 이유로 시장을 찾았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게되는 '상처'가 아닐까 한다. 거기다 순전히 제품에 대한 책임이 소비자 안목에 전적으로 전가되는 탓에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당하는 놈만' 바보라는 인식이 철저하게 자리하고 있어 시장 스스로가 진입을 어렵게 하는 일종의 바리게이트화 되어 있다. (특히 노점의 경우에는 고정적인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사람이 좋아서' 샀다가는 나중에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뜨고 난' 자리에 물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여기서 절대화되고 맹신화된 '되도록'이라는 차원에 대해서도 역시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오는 이들에게 실망으로 재의미화 하는 것, 시장을 여전히 피동적인 '골목'으로 있게 하는 그 맹신적인 능동성은 반성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