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경직된 조직을 '유연'하게 시장화한다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은 '시대의 부름'이었다. (논자의 말처럼 비정규직이라는 명칭이 시야를 제한함으로써 문제를 협애하게 풀어가게 되는 기제이기는 하지만.'인간다운'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우선 인간을 보증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면서 논자의 말처럼 "해고는 살인=고용은 생명이다"라는 인식이 물결치고, ""8시간만 일하고 싶다"는 외침으로 시작한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는 십 년 넘게 모두 "일하고 싶다"는 정반대의 구호를 외치면서 반복되었다." 자아실현이 최상위층에 자리한 메슬로의 욕구단계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최하층의 절박함과 절망에 가까운 표징이었다.


 고용이 목숨이 되었고 고용은 신이 되었으니 신성동맹이 탄생했다. 고용만 보장해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동맹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광주의 캐리어에서,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 되겠다고 싸우는 비정규직을 두들겨 패는 일이 생겼다.


 논자는 이것을 욕망을 '공동흡연'하는 모습으로 바라본다. 점증하는 기술 시대에 점진적으로 쓸모가 없어지는 인간들에 대한 태도, 그것을 숨 쉬듯 욕망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급속노조 조합원교육 때 '연대감수성'을 얘기하곤 한다. 우리는 통닭을 시켜 놓고 늦게 배달 오면 전화를 걸어서 "닭 잡냐"고 재촉한다. … 갑자기 휴대전화로 "고객님 좋은 상품이 있으니 소개하려구요."라고 시작하는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받으면 욕을 하거나 퉁명스럽게 끊는다.


 금전이라는 익명성 이면에는 그것을 담보하고 실물로 보장해 주는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살아남고, 살아남으려는' 가운데에서 그런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살아남은 것이 왕도(王道)다. 서로가 서로에게 육욕의 변기가 되어.. 유대와 연대는 얼마나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김동춘 씨는 "한국인은 일제하에서 한편으로는 차별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관리등용을 위한 고등문관시험, 의사 및 기술자 자격증 제도 같은 국가 주도의 교육화폐 발행과 국가에 의한 교육자격증 공인제도의 경험을 나름대로 내면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광복을 기폭제로 터져 나온 교육 과잉이라는 욕망을 이렇게 진단했다. 



 50년대 경제활동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은, 비록 자신은 농민으로서의 존재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통해서 현실탈피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지금까지 한국의 관료·정치가·대자본가들은 국민들에게 도덕적인 모범을 보여 왔다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한편으로 그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들 지배집단의 형태를 닮아가게 된다"라고 도덕의 위기를 진단한다. 아무도 '여기 현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내 자식' 만큼은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절규에 가까운 절박함들은 누구나 꿈꾸게 한다. '인간답게'라는 구호가 가장 생명력 있게 표출되었던 장소가, 오늘날 취업 준비(대학)생과 청소 노동자의 모종의 뒤엉킴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태가 되었다.

















※논문은 《진보평론》(54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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