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力道山'
이 한자를 당신은 어떻게 발음하는가? '리키도잔'(일본식)인가, '역도산'(남한식)인가, 아니면 '력도산'(북한식)인가? 또 당신은 이 고유명사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가라테 촙이 작렬하는 흑백 영상의 프로레슬러 이미지인가, 한국의 영화배우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의 한 장면인가, 또는 북한 작가 리호인의 전기소설에 나오는 삽화나 사진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시각으로 '力道山'을 접했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다를 것이다.
力道山은 고정된 좌표이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동아시아라는) 층위는 각기 다르다. 굴욕감을 응징해 주는 리키도잔, 대한의 남아 역도산, 미제와 일제를 때려눕히는 력도산. 각기 모두 力道山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향하지만, 가는 길도, 되돌아오는 길도 모두가 제각기로 흩어지는 것이다. 국사는 역사에 대한 긴장을 해소하지만, 그와 동시에 국사라는 지위는 역사라는 위치를 (논문의 표현에 따르자면) "불협화음을 내면서 흔들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한국판 영화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았던 것은 이 글에서도 논한 한국 및 북한이라는 '본국'과의 관계였다. 한편 북한의 '력도산' 표상에는 인디언 오토바이와 모터보트를 타고 골프를 치며 모던스러운 주방에 서 있는 '미국적'인 모습은 없다. 게다가 '같은' 일본에서 '같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의 반응이 달랐음을 말했는데, 그렇다면 표상이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경험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기억의 분열은 반드시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와사키 미노루, 이타가키 류타, 정지영-기억으로 동아시아 생각하기, '동아시아 기억의 장' 탐색]과 연동된다.
※논문은 《역사비평》(95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