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계약 상황을 둘러싼 주권 논의에서 홉스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동시에 끌어와 홉스적 현대 주권 기획을 이야기한 레오 스트라우스를 "비판하면서 현대 주권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하는 논문이다. 논자는 "현실의 주권에서 자연권은 고귀한 거짓말이 되어 강력한 주권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환상구조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이는 현실 주권의 폭력성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저항을 주권의 영역 안에서 진행하게 하는 모습을 낳을 수" 있으며, "마치 자신의 자연권이 존중되고 있다는 환상을 가능하게 하여 전제적 주권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스트라우스가 홉스의 유물론적 성격을 부차적인 차원으로 부정하면서도 홉스의 마키아벨리적 가치, "전통정치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정의란 무엇인가?'였지만, 홉스에게 가장 관심을 끈 주제는 '정치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법이라고 부르는가?'"라는 차원만을 복원시킨다는 점에서 지적한다. 이것은 "즉 국가의 본질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주지"인 동시에 고지하는 차원으로, "소크라테스적 전통이 실패하는 곳에서 자신의 성공지점을" 찾는 홉스에게서처럼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마틴 다이아몬드가 "미국 건국자들은 인간의 정열과 이기심을 활용하여 계급주의의 도전과 다수의 횡포를 저지하는 체제를 건설하려 했으며, 따라서 미국민주주의는 홉스식 철학에 근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아닌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론에 입각한 체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정치제도가 자기보존의 원리에 입각해 있으며, 미국헌법은 특정의 제도가 아니라 제도 그 자체를 강조한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동등하게 발견된다.


 논자는 여기에 대해 "자연상태는 계약 이후에 종결되어 그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약을 지탱하는 힘으로써 언제나 계약의 이면에 붙어있다"고 평가한다. 계약의 부재가 자연이라는 등식은, 우선적으로 계약 자체를 선험한다는 점에서 자연은 결코 선차적으로 체험될 수 없는 영역임에도 그 부재 상태를 '자연'이라고 명명하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계약이 정식화하면서 -홉스적 이성- "죽음을 피할 유일한 방도를 찾아 계약"으로 이끄는 것이다. "공포에 의한 계약은 유효"하며, "칼이 없는 계약은 빈 말에 불과하며 인간을 보호할 힘이 없다"는 홉스의 단언은 바로 그점을 향한다. 스트라우스에게서 지양되는 홉스의 유물론은 바로 거기로 이끈다고 한다. 즉 "홉스에게서 본성이라 함은 언제나 그러한 본질적인 성질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특정한 성질이다." 만인의 만인 투쟁 상태는 체험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약은 그것을 체험으로 삼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에 



 "(…) 하나는 성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법'이고, 다른 하나는 불문의 형태로 존재하기 떄문에 자연'법'이라고 할뿐이다."















라는 홉스의 발언처럼 "따라서 '법'을 관장하는" 주권만이 오로지 '결정적이게' 되는 것이다. 논자는 계약의 부재 상황을 '자연스러운 공포 상태'라고 정식화하는 미국의 총기 자유화를 논의한 촘스키를 주목한다: "미국인들은 누군가에게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렴을 안고 살아가며, 공격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공격받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혀있다고 보는데, 그(촘스키)는 경제·언론권력이 이러한 상황을 조장한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현대의 곤경이란 '능동적이고 때때론 적극적인 수동성'에 있다고 보인다. 홉스에게서 "사형수와 주권자간의 (법적 보존이라는) 계약은 (그 '보존'이라는 명시성 자체가 무효화되었으므로) 해지가 되어 그는 오직 단독으로 주권자에게 저항할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촘스키의 논의처럼 "국민이 권총을 가지면 정부는 탱크를 가지고, 국민이 탱크를 가지면 정부는 원자폭탄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주권에 대한 특정 논의는 주권 자체로 원천봉쇄되기 때문이다. 












(논문은 권의 구별 없이 인용하고 있는데, 인용부분은 1권이 아닌 2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감벤이 지적한 "법이 그것을 통해 아노미와 합체되는 하나의 픽션"이라는 주권의 위상적 지위를 경유하고, 마찬가지로 홉스를 경유하는 슈미트의 정치신학적 논의 역시 논문은 간략하게나마 포함하고 있다.




※논문은 《진보평론(55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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