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실증적 작업, 여기서 탈락하는 '기억하는 주체'라는 망각된 지위를 복원하는 역사학의 기억론적 전회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언어론적 전회의 소산물이기도 하다.) 논문에서의 응집된 표현으로 전하자면 "그동안의 논의에서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배제되었는지 비판적 재검토가 진행되는 것이야말로" 사안의 의미다. 이러한 작업의 의미 선상에서 주목하는 것이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 프로젝트이다. 논문은 이 일련의 프로젝트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졌던 프랑스 '국민감정'의 기원과 생성을 연구하기 위해 "집합적 기억이 뿌리내려져 있는 중요한 '장소'(lieux)를 분석함으로써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의 광대한 토폴로지(topology, 지세학)를 창조하고자 한" 프로젝트
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민족주의에 대한 역사학의 '상상된'이라고 하는 것과 연동돼 맞물리면서, 당연하게, 그리고 "전통적이며 강고하게, 일원적으로 표상되어온 프랑스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대화하려고 했다는 것"에서 논자는 그 의의를 찾는다. 이질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생득적 권리란, 오히려 생후적으로 체험되고 감각되는 역설에 자리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러한 프로젝트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이 '프랑스'적 프로젝트에서 발견되는 "프랑스 식민지를 둘러싼 요소가 대부분 '기억의 밖'으로 쫓겨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단순히 깜박 잊어버렸다거나 능력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상사적 개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한계성으로 지적하고, 그러한 논의 차원을 끌어 안으려면
'기억의 장'의 전개 속에 당초부터 있었던 그 암묵의 국민주의적 한계를 철저히 극복한다는, 즉 '내셔널 히트로리를 배워서 버린다'는 시도를 가능한 한 밀어붙인다는 자각을 가지는 방법밖에 없다.
고 진단한다. 이것에 대해 '기억하는 국민'이 수반하는 기억의 누락점-"에르네스트 르낭은 "국민의 본질이란 모든 개인들이 많은 일들을 공유하고 또한 전원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단언했다-을 "언제든 새로운 기억이 접붙여지고 지형도가 재편성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야말로 확정적이지 않은 열린 장소로서의 동아시아, 유동적인 열린 의미의 영역인 기억을 논의한다는 것이 지닌 의미"라고 덧붙이고 있다.
※논문은 『역사비평』(102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