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부르짖던 나는 현재 정의로운 사람인가 Y/N"



 지망이 엇갈린 탓에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당시의 내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학교에서 같이 생활할 '새로운 친구'였다. 입학식을 치르고 들어선 그 서먹서먹한 교실의 냄새와 정경들. 종이 치면 하나둘씩 뿌리를 찾듯이 친한 친구들을 찾아 교실을 떠나는 학생들의 틈틈이 사이로 나는 가만히 앉아 어떻게 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까, 라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어떤 계기여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다행히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편한, 이름이 '봉준'이라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 '느낌'은 순식간에 전복돼 '불쾌함'으로 뒤바뀌었다. 시간이 차차 흐르면서 이런저런 친구들을 알음알음함에 따라 실은 '그 친구'가 좀 모자라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리송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태도는 단호하게 결정되었다. 나는 차츰차츰 싫은 내색을 겉보이며 거리를 두었다. 나는 완벽하게 '이들'로 동화되었다. 한편으로 나는 완벽히 그들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시범적으로 '특수학급'을 운영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몇몇 수업을 같이 받음으로 해서 일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였는데, 우리라는 사회가 만든 적응 준칙은 '놀림'이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모두 '웃음'이라는 범적으로 뒤엉켜있다는 것, 그것이었다. 모두가 반성을 비운 채로 동참할 수 있었고, 모두가 즐거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겪는 곤란이란 '말하기 어려움'이었으므로. 



 율라이는 따따르 언어로 이반 꾸즈미치의 질문을 되풀이해 던졌다. 그러나 바쉬끼르 인은 똑같은 표정으로 그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좋아.] 사령관이 말했다. [입을 열게 해주지. 얘들아! 저놈의 멍청한 줄무늬 옷을 벗기고 등짝을 후려쳐라. 율라이, 매운 맛을 보여 주라고.]

 두 명의 늙은 병사가 바쉬끼르 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들의 질책과 꾸중에 항상 준비된 그 대답, "노는 건데요?"라는 저열성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렇지만 주책을 부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동참할 마음도 없었다. 초중고 내내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자기표현에 소심하지만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착한 아이의 전형이었다. 나는 항상 그 (있지도 않은) '거리감'에 주의해 행동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심성이, 또는 근본은 착하다는 말을 별 어려움 없이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 질문은 언제나 나를 당혹스럽게 물어와 나를 어지럽게 뒤흔든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일까?... 나는,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나빴어야 하지 않았나?"



 뒤늦게서야 생각난다. 우리가 벗기고 벗겨서야 혀 대신에 튀어나온 힘겨운 (그마저도 '대롱대롱'거리는) '작은 나무토막 하나'가 "하지마"였다는 것을. 내 진실한 거리감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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