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 스피커를 통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명랑한 목소리로 또렷하게 읽힌다. "저희 마트를 찾아주신 고객님, 모두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에 맞춰 점원 모두가 똑같이 말한다. "저희 마트를 찾아주신 고객님, 모두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나와 점원 사이에는 당혹감을 줄 시선의 마주침은 없다. 매대에 진열된 상품이 말을 걸어오고, 상품에게 말을 건다. (작가들의 흔한 소재처럼) 그 대본에 아무 문구나 삽입하더라도 이 풍경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아무런 접촉점도 없는 이 무성의 육성들.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일이었다. 그건 서로의 위치를 정확히 양분하고 정확히 자리하게 해주는 친절한 팸플릿이었다. 나도 똑같이 그 대본을 스피커를 통해 전달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의 '다르다'는 거리감 덕분에 동일한 공간 선상에 있으면서도 나는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무성의 목소리가 나를 때린다. "저희 마트를 찾아주신 고객님, 모두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나 역시 꽤 오래 캐셔로 일했었다. 편의점이라기에는 크지만, 그렇다고 대형 마트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크기의 가게였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흐릿하게, 그러나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억의 단칸이 있다. 당시 손님은 초면이었는데, 냉장 식품을 사면서 데워달라는 부탁을 했다. 대형 마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주업무는 계산이기 때문에 편의 업무는 손님이 직접 해야 하는 식이었다. 나는 렌지를 가리켜 직접 데우면 된다고 안내했다.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 손님은 같이 온 일행과 전자레인지에 식품을 돌리며 대화를 나눴다. "시X놈의 세상 참 좋아졌네. 손님이 왕 아니야?" 내 얼굴은 벌겋게 화끈거렸다. 내가 계산을 하는 와중에도, 그리고 볼일을 다 보고 나서는 그 짧은 순간조차도 그의 험담은 그치질 않았다. "돈 버는 게 아주 X이지. 편하게 돈 버네." 나는 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울분을 '손놈'의 뒤통수에 토했다. "안녕히가세요"라고...


 나는 좋게 말해서 곱게 자랐고, 나쁘게 말해서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아이였다. 언젠가 말을 너무도 안 듣는 나를 눈높이 선생님이 원망하듯 어머니 앞에서 하소연한 일이 있었다. 그런 게 너무 싫은 나머지 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현대판, "서울대라고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울대생의 자살은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사회적 우려였다.) 겸연쩍은 엄마는 웃었고, 눈높이 선생님도 분위기에 맞춰 따라 웃었다. 지금의 나도 당시를 생각하면 따라 웃는다... 알 수 없던 공모의 그 웃음을, 이제는 나도 이해한다.


 한편으로 일련의 일들은 나를 내게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모독과 모욕, 참을 수 없다 여겼던 것들 앞에서도 나는 별 이상 없이 잘 참아냈던 것이다. 최근에 상대를 비아냥하고 조롱하는 '부들부들'이라는 표현이 이만큼 잘 들어맞는 경우가 없었다. 칸트의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경험이었다. "스스로 벌레로 취급하는 자는, 그가 짓밟힌다고 한들 나중에 불평할 수 없다."

















 다시 낯익은 풍경, 그리고 거기엔 낯익은 내가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있다. 다른 손님의 물건에 밀려 내쫓기듯 허겁지겁 내 물건을 챙기기에 유념 없는 내 모습. 나는 바보 같이 인사하며 재빨리 그 자리를 뜬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거기엔 눈길조차 없다. 유대 대신에 밀려오는 뒷손님의 물건들이 나를 꾸역꾸역 밀어낸다. 나는 쫓기듯 빠져나와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올라탄 버스에서 멍청한 상념들에 잠긴다.



















"저희 마트를 찾아주신 고객님, 모두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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