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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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11-20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시에 관심이 좀 가는데 감사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1-20 18:40   좋아요 0 | URL
저도 시는 잘 몰라요. 생각나는 대로 찾아보는 거죵 ㅎ

yureka01 2015-11-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벽인 쌓고,
어디선가 벽을 허물고..^^..

지금행복하자 2015-11-20 18:38   좋아요 0 | URL
분명 벽이 필요하기는 한데... 불통을 위한 벽은 좀 그렇죠~~
벽을 쌓아도 문을 좀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하나만 만들어 놓아 지금이 된것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