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니 반가운 선물이.
오래동안 지역 공부방을 하다가 그만두고 재취업센터를 다니던 친구가 최근에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의회에서 예산이 깎여 문 닫게 된 공익활동지원센타란다.
잘 하고 있던 곳인데 느닷없는 예산 삭감에 이은 폐쇄..
반대 서명해주라고 온 연락이었다.
그 소식은 반가운데 왜 하필..
꼭 학교 다닐때 같다고 추억돋는다고~~
이렇게라도 웃어야 한다고~~ 하면서..


엊그제 티비에서 봤다.
비밀독서단인가?
예지원이 시를 읽어주는데 너무 좋았다..
예지원은 시를 참 잘 읽는다는 생각을 예전에도 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시는 글로 읽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는 것이 확실히 더 좋다
소리로 읽는 문학.

같이 보고 싶다.. 친구야!
힘내라.
너의 근성을 보여줘라~
투쟁이란 단어.
오랜만이다.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지만
지금 너의 상황에는 적확한 단어같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날지 못하는 새는 있어도 울지 못하는 새는 없다》

삼남매의 손을 탄 종이 인형 같아 목이 앞으로 꺾어지는
당신 주름은 무게와 무게가 서로 얽혔던 흔적이라 적어두
고 나는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네 보조바퀴처럼 당신을 따
라다니네

양은 냄비 뚜껑에 배추김치가 올라 앉는 무게 밥상의 무게
를 밀어두고 화투장의 무게를 뒤집으면 팔월, 무주공산에
삼월, 홍싸리가 피네 오늘 저녁쯤엔 귀한 무게를 만난다
는 패를 싣고 길가로 나오네

무게의 내력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소리에 귀 기울
이는 일은 내 생에서 절망이 아닌 것들을 골라내는 일 당
신은 지금껏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만 주웠으므로, 나
는 노트에 적어두었네

날지 못하는
새는 있어도
울지 못하는
새는 없다

길가 담벼락, 온 몸의 무게를 들어 당신이 버러진 폐지를
꺼낼 때 나는 우유를 꺼내네 황달 앓는 막내둔 같아, 수레
에 잔뜩 실린 골판 골판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길을 둘다 갑자기 그 수레를 만나
면 누구라도 `탑`하고 걸음을 멈출 수 있었네

그 `탑`을 조심스럽게 피해 돌아보면 사면으로 쌓인 골판
과 골판 `사이`에 오늘의 결정 같은 주스병이 맺혀
있었는데 수레를 쫒으며 속기한 내 노트에는 `사이`가 `사리`라고 오기되기도 했네

언덕을 내려가는 당신의 몸이 뒤로 젖혀지네 무게를 잊고
처음 바람을 읽는 어린 새 같아 어둠보다 높이 오른 탑의
꽁지가 막 들썩이기 시작했네


《지금 우리가》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웇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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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0-0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로 읽는 문학`이란 말이 참 좋은 아침이예요 ^~^ 예지원씨 낭송하는 부분을 못봤는데 찾아보고 싶어집니다ㅋㅂㅋ,

지금행복하자 2015-10-08 08:43   좋아요 0 | URL
북플하면서 제일 좋은거.. 시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워낙 독서편식이 심해서요~~
예지원씨가 멜랑꼬리한 거 좋아하잖아요. 시 읽어주는데 괜찮았어요~^^

단발머리 2015-10-0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은 제가 읽고 선물했는데 다시 사야겠어요.
좋은 시가 참 많아요^^

지금행복하자 2015-10-08 19:41   좋아요 0 | URL
좋아서 선물한 책은 꼭 다시 사게 되는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