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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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의 쓰바키야마 과장. 백화점 여성복 판매과장이다. 고졸로서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정말 성실하게 일과 가정밖에 모르고 살던 그는 그만 뇌혈관이 터져 죽고만다. 그리고 도착한 증유청. 저승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승에서의 행적에 따라 잘못을 분류하고 교육시켜 반성하게 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저승에서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공무원들이다.


아무튼 살인을 비롯하여 그 어떤 죄를 저질렀다고 하여도 일정 시간의 교육을 받고 반성 버튼만 누르면 극락으로 왕생하게 되니 참으로 편리하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쓰바키야마 과장은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갑자기 죽은 관계로 아내와 아들의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고, 치매에 걸려 병원에 계신 아버지가 걸리고, 백화점 일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우려가 되어 그러한 일들을 해결하고 싶다며 사흘간 이승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해서 힘들게 돌아온 이승에서 그가 알게 되는 진실들은 쓴 웃음이 날만큼 아이러니다. 아내는 자신의 직속 부하와 불륜 관계이고 그 사실을 눈치챈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척 연기를 하여 집을 떠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아이마저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 어쩌면 모르는 게 날뻔 했던, 그냥 극락왕생하는 편이 훨씬 속편했을 일이다. 그러나 일이 풀려나가는 과정을 보아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모든 사실들을 알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는 더 큰 사랑을 보여준다. 며느리를 힐난하지 않고, 피가 섞이지 않은 손자라고 해도 괘념치 않고 아껴주고 가르쳐 주고, 심지어 나중엔 다른 아이를 대신해 지옥까지 대신 가주는 진정한 사랑의 화신이다.


불평불만하지 않는 삶, 그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제아무리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도 결코 패배감에 빠지지 않으면서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관점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오늘 갑자기 죽게 된다면 쉽게 눈감을 수 있을까? 이승으로 다만 몇일간이라도 돌아갈 상응할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 좋을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야쿠자도, 교통신호를 잘 지켰는데도 트럭에 치여 숨진 어린이도 결국 사랑때문에 이승으로 돌아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본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는데 아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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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하 - 조선의 왕 이야기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 지음 / 소라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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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서는 광해군에서부터 순종까지의 왕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그 동안 알고 있던 지식에 덧붙여 알게 된 내용들도 있고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서술해 놓은 부분도 있어 새로웠다. 그 중 특히 몇몇 왕 때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데, 먼저 광해군이다.


작년에 <광해의 연인>이라는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유독 광해군 시절 이야기가 관심이 갔다. 임진왜란때 멀리 피난간 선조를 대신하여 훌륭히 분조를 이끌었던 유능한 세자였던 광해군이 어찌하여 폐모에 무리한 궁궐 공사에 몰두하며 타락했을까? 매우 궁금하던 부분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의 정신상태를 PTSD로 설명하고 있다.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임진왜란 중 겪었던 트라우마들, 왕에게 미움받는 세자 시절의 고통 등이 광해군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가 심리학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미신에 몰두하고, 동생을 죽이고 왕후를 폐모하는 등 어지러운 정치를 펼쳤다는 것. 정말 그럴듯 하다. 왕도 한 명의 사람이 아닌가. 전쟁터를 돌며 고생을 하며 온갖 것을 보았을테고, 그런 고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는 인정해주지 않는 길었던 세자 시절. 사람이라면 트라우마를 받을 수 밖에 없을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훌륭한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너무나 완벽해서 존경하고 좋아하던 정조는 이 책을 읽고 더욱 좋아졌다. 학문에 도통하여 경연에서 임금을 가르칠 수 있는 학자가 존재하질 않았고, 그렇다고 문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무예에도 열중하여 활을 오십발 쏘면 마흔 아홉발을 명중하였다는 사람. 그 한 발마저도 겸손함에서 일부러 실수한 것이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술을 좋아하여 폭주하고, 담배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정조는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완벽한 사람으로 보여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렇다고 꽁생원도 아니어 술,담배까지 사랑하는 남자라니, 너무 멋지다. 그리하여 몸을 혹사해 오래 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정조독살설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은 새로웠다. 나역시 그저 노론은 정조를 박해하는 나쁜 쪽, 체제공은 정조 편을 들어준 좋은 사람이라는 이분법에 빠져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엔 그동안 읽었던 소설이나 책에 의한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편중된 시각에 변화를 줄 수 있어 신선했다.


사도세자는 노론 들의 음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줄 알고 있었는데, 오로지 영조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 세자였기 때문이 이유이고, 노론 세력은 그저 방관자일 뿐이었다는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진다. 완벽주의자 영조의 마음에 차지 않은 아들이어 계속 혼나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실수하고, 그러면 또 더욱 혼나는 악순환.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세손을 다음 왕으로 점찍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이야기, 참 충격적이다. 아무리 왕이라도 이토록 비정할 수 있는 것일까? 새삼 권력의 무게, 왕이라는 자리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 책은 기존의 관점과는 새로운 견해를 보여주어 신선했다. 주의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이모저모로 따져 여러방향에서 조선의 역사와 왕들의 이야기를 분석해서 공부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지식에 더해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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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당신과 문장 사이를 여행할 때
최갑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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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다 읽고 덮으니 제목이 더욱 다가온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을 꿈꾸며 산다. 작가의 말대로 어떠한 문장을 놓고 사랑이라는 단어 자리에 여행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도 의미가 통하고 말이 된다. 우리가 꿈꾸고 이상향처럼 바라보며 사는 그것, 사랑과 여행은 같은 말이었다.


사진과 글이 함께하는 여행에세이를 워낙 좋아라한다. 그런데 여기 이 책엔 내가 좋아하는 한가지가 더 있었으니 바로 최갑수 작가가 만난 책 속 문장들이었다. 멋진 사진에 멋진 문장이라니! 정말 금상첨화다. 사진들이 깨끗하게 이뻐서 참 마음에 들었다. 일상의 때묻음과 남루함이 덮여지고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최갑수 작가는 사진을 더욱 잘 찍고 싶고, 사진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에 갖고 있던 카메라와 렌즈들을 모두 처분했다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어떤 전환점을 맞고 싶을 때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문장을 더욱 잘 쓰고 싶어 책장을 싹 물갈이하는 그런 기분일까? 아무튼 난 지금의 그의 사진들도 너무 좋은데, 앞으로 그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버스 안에서 틈틈이 가오싱젠을 읽었어요. "사변은 창작 충동을 압살하여 예술가를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독약과 같다. 회화가 시각적 감수성을 버리고 사변으로 달아나버리면, 사변이 시작되는 그 자리에서 회화는 끝난다. 너는 예술론을 쓰기보다 너만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 같은 구절에 밑줄을 북북 그었죠. 서안 취재여행에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급하게 떠나다 보니 다른 책을 가져가지도 않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66p)                      


어째서 나는 예술가도 아니면서 이 말에 그렇게나 동의하며 밑줄을 그었을까? 어쨌든 생각만 거창하게 하기보다는 내 생활 자체로 들어와 거기서 몸에 닿는 감각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머리로만 이상적인 삶을 꿈꾸지 말고 현실의 구체적 경험에서 살자. 또한 내가 만약이라도 재밌는 꺼리도 없는 곳으로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책이라도 더욱 의미있게 곱씹을 수 있겠구나 하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아, 그런 시간이 얼마 만이었는지. 빗속, 버드나무가 점점 짙어지는 연록의 시간을 바라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는지. 그동안 말을 많이 하고 살아온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한 일은 많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미뤘던 것 같아요. 밖은 보려했지만 안은 외면하려 했던 것 같아요.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책을 읽어내리다가 "너는 논리를 그리지 마라"에서 다시 밑줄. 비는 어느새 그치고 한 무리의 패키지 여행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에 화청지를 빠져나왔답니다.                                           (69p)


그렇다. 여행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실상 여행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도 아니고, 다만 버드나무가 점점 연록이 되는 것을 산책하며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나의 일상에 가깝다.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나처럼 책을 읽으며 밑줄 긋고 있는 독서가를 만나는 것도 의외의 반가움이고 더군다나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생활 가까운 곳에서 안을 바라보며 집중하라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무조건 여행을 떠나라고 재촉하는 책보다 훨씬 와닿고 마음에 든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떠난 대로, 못떠나고 여기 있으면 여기 있는대로 최대한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집중하여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들어주자.


죽음을 몇 달 앞둔 여든한 살의 테라스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같은 건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 봐야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걸, 최선을 다해봐야 그다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그때쯤이면 알고 있을 테니까. 다만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고 더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플 것이다. 즐거움과 사랑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데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놓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84p)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위로를 받은 멋진 문장이다. 그동안 그 때 최선을 다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이러한 생각들로 마음에 짐을 쌓아두고 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내려놓기로 했다. 그때로 돌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해도 그다지 크게 바뀌는 건 아니겠구나, 이 사실을 죽을 때가 되서가 아니라 지금 알게 해줘 너무 고맙다. 문득문득 찾아드는 그러한 후회로 내자신에 대한 믿음을 백프로 갖고 살지는 못하는 나였는데, 이제는 더 즐기고 사랑하는 일에 전력을 쏟아야겠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어린 날들은 이제 놓아주자.


손바닥을 비비며, 돌이켜보건대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나.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타닥타닥, 석탄이 타는 소리, 다시 돌이켜보건대, 즐겁지 아니한 시절이 있었나.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감정이 힘없이 시들어가고/예전에 밝게 타오르던 사상의 불꽃도 이울어가니/세상이 앗아가는 기쁨도 없고/세상이 줄 수 있는 기쁨도 없네"라고 했던 이는 바이런이었나, 러셀 영감은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라고 말했던가.           (117p)


나는 이런 생각을 사랑한다. 뭔가 어른스럽다. 작은 일에 기뻐하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것이 어른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울 것도, 그렇다고 즐겁지 않을 것도 없는 인생이다. 인생에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조용한 인생이 내가 바라는 삶이다.


인생에서 사실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살다 보면 세상은 어차피 혼자서 헤쳐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서른 지나면 친구는 점점 멀어져. 희미해지다 수평선 너머로 훌쩍 사라지는 거지.

영원한 우정...... 이런 건 뭐, 영화에나 존재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                            (154p)


우리가 목적지에 닿는 유일한 방법은 왼발 앞에 오른발을 두고, 다시 오른발 앞에 왼발을 두는 일, 그것 말고는 없다. 읽고 쓰는 일, 보고 찍는 일, 그것이 최선인 것이다.                                                   (209p)


그러니까 취향과 식견, 시선인 거예요. 사람은 그게 다예요. 예술에 대한 취향과 세상에 대한 식견, 삶을 바라보는 시선. 이것이 나를 존중받게 만들어줘요.                          (228p)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 파울로 코엘료, <알레프> 인용



멋진 사진과 멋진 글로 가득한 멋진 책.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어디를 여행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말랑말랑해진 감성으로 찍은 사진과 읽은 책과, 거기서 나온 글들이 여기 내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까지 울림을 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여행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최근의 여행은 구정 연휴, 시부모님 모시고 다녀온 후쿠오카, 유후인이다. 당시에 기록을 남겼다면 더 좋겠지만 묵히고 묵혀 숙성시킨 뒤 잊지 말고 꼭 글로 남겨놓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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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0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은 글귀가 많군요.
눈길 갑니다. 시부모님과의 유후인 여행기, 기대할게요^^
 
소중한 나의 몸 특별한 나의 꿈 미리 읽고 개념 잡는 초등 통합 교과
이혜진 지음, 김주리 그림 / 조선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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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의 몸에 대해 알아보는 부분과 나의 꿈에 대한 부분이다.


먼저 소중한 나의 몸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각자 다르게 생겼고 특징들도 다름에 대해 알아본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쌍둥이라 해도 다르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까지 모두 다르다. 그렇게 달라지는 이유가 부모님으로부터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음이라는 것에 대해 공부한다. 또한 우리 몸의 각 기관, 피부에서부터 눈, 귀, 소화기관까지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는데, 상세한 그림들이 함께여서 어려운 개념도 쉽게 익힐 수 있다. 내가 놀란 점은 요즘 초등학생들 공부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었다. 우리때는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어려운 개념들에 노출되는 것 같다. 우리 아이가 나의 몸 파트에서 가장 신기해 했던 것은 구불구불 접혀 있는 작은창자를 쭉 펴면 무려 6미터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우와~ 우리 몸 속에 이렇게 긴 게 들어있어? 아이의 반응이다. 재미있는 그림들이 함께 있으니 아이가 더 좋아하며 흥미를 갖는 것 같다.


우리 아이가 특별히 더 좋아했던 부분은 나의 꿈 이야기이다. 기차 운전사가 되고 싶다가 요즘은 과학자가 꿈이라는 우리 아들. 그렇지만 세상에 어떤 직업들이 존재하는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했었다. 대통령이나 축구선수나 기관차 조종사 등이 한정된 상상의 세계였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범위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을 좋아했다. 기자, 경영자, 건축가, 농부, 발레리노 등이 지금도 생각난단다. 그러니 아이의 꿈도 아는 게 많을 수록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동안 세상엔 이러이러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생각은 별로 하지 못하면서 넌 꿈이 뭐야? 이런 질문만 가끔 하던 나도 뜨끔했다. 스티븐 호킹과의 인터뷰도 있어 과학자가 꿈인 우리 아이가 참 재미있게 읽고 시야를 넓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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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을유세계문학전집 80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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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은 내가 생일선물로 받을까 고민까지 했던 갖고 싶은 책이다. 일단은 갖고 있는 책들을 읽고 책장에 꽂을 자리를 마련하고 데려오자는 계획하에 잠시 미뤄두고 있다. 그 을유세계문학전집의 80번째 책이 바로 이 <쾌락>이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이탈리아 유미주의 문학의 기수라고 한다. 사실 데카당스라든지 유미주의 같은 단어가 생소한 데다가, 이탈리아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기에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직 내 수준엔 어려운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후에 제임스 조이스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들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선구자적인 명작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다.


1800년대 이탈리아 로마 귀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만큼 소재들이 굉장히 귀족적이고 고급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의 심리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 만큼이나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에 할애하는 부분이 많은데 모두가 장미향이 느껴질만큼 고급 취향이고 아름다웠다. 실제하는 건물이나 동상, 미술작품들을 배경으로 등장시키는데 유미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두 명작들이다. 그러한 것들을 사진이 아닌 책을 통해 문자로 만나보는 느낌이 새로웠다. 또한 아끼고 보존해야 할 것들로 여겨지는 문화재들, 그것을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직접 살로 닿으며 부딪쳐 생활하는 귀족들의 모습이 뭔가 실제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연극의 배우들처럼 여겨졌다.  역시 21세기 지금의 상황과는 괴리가 있어, 많이 다른 모습에서 주인공이나 그 외 어떤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느끼기보단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 남녀의 사랑은 현재의 내가 선뜻 이해하기엔 고정관념의 벽에 부딪쳐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한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 거기에선 그랬나보다 하며 읽었다.


멋진 청년 안드레아가 유부녀를 포함한 여러 귀부인들과 애정의 행각을 무슨 생각을 가지고 벌이는지, 남편들 또한 그들의 정부를 알면서도 그냥 두고 보는 것 같아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많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분위기만은 뭔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엘레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 귀부인들의 옷차림새, 자연과 건축물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 등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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