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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80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을유세계문학전집은 내가 생일선물로 받을까 고민까지 했던 갖고 싶은 책이다. 일단은 갖고 있는 책들을 읽고 책장에 꽂을 자리를 마련하고 데려오자는 계획하에 잠시 미뤄두고 있다. 그 을유세계문학전집의 80번째 책이 바로 이 <쾌락>이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이탈리아 유미주의 문학의 기수라고 한다. 사실 데카당스라든지 유미주의 같은 단어가 생소한 데다가, 이탈리아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기에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직 내 수준엔 어려운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후에 제임스 조이스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들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선구자적인 명작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다.
1800년대 이탈리아 로마 귀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만큼 소재들이 굉장히 귀족적이고 고급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의 심리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 만큼이나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에 할애하는 부분이 많은데 모두가 장미향이 느껴질만큼 고급 취향이고 아름다웠다. 실제하는 건물이나 동상, 미술작품들을 배경으로 등장시키는데 유미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두 명작들이다. 그러한 것들을 사진이 아닌 책을 통해 문자로 만나보는 느낌이 새로웠다. 또한 아끼고 보존해야 할 것들로 여겨지는 문화재들, 그것을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직접 살로 닿으며 부딪쳐 생활하는 귀족들의 모습이 뭔가 실제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연극의 배우들처럼 여겨졌다. 역시 21세기 지금의 상황과는 괴리가 있어, 많이 다른 모습에서 주인공이나 그 외 어떤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느끼기보단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 남녀의 사랑은 현재의 내가 선뜻 이해하기엔 고정관념의 벽에 부딪쳐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한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 거기에선 그랬나보다 하며 읽었다.
멋진 청년 안드레아가 유부녀를 포함한 여러 귀부인들과 애정의 행각을 무슨 생각을 가지고 벌이는지, 남편들 또한 그들의 정부를 알면서도 그냥 두고 보는 것 같아 확실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많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분위기만은 뭔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엘레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 귀부인들의 옷차림새, 자연과 건축물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 등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