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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평점 :
편집자 K의 2025년 비문학 도서 탑 5에 있었던 책.
덕분에 진짜 간만에 철학 책을 읽음. 생각보다 재미있음.
뭔가 정리하고 싶으나, 그건 나의 영역 밖이고 너무 유려한 그의 논리 속에 빠져 웃기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함. 꽤 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어떤 문장에선 멈추고 나와 내 주변을 생각하며 적용하기도 하는 독서였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산다고들 한다. 정착민과 유목민.
어른들 말로 역마살이 낀 사람들. 정착하고 살면 엉덩이에 가시가 돋는 사람들이 분명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착하여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아마도 정착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아무리 제자리를 찾아 안주하려고 해도,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과연 여기 딱 좋아! 이거 내 자리하고 정착이 가능한지 생각해 보자. 사회적, 물리적, 환경적, 감정적인 동요가 없는 인생은 없다.
페렉은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라고 했단다. 12p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은 더더욱 제자리를 찾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한꺼번에 자신의 자리에서 너무 멀리 낯선 곳에 덜커덕 놓이는 경험이기에 불안하고 낯설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런 이유겠다. 그럴 때 곁에 있는 사람의 사랑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 시킨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자신의 몸이 자신을 담는 것을 느끼는 것이며, 마침내 모든 유토피아의 바깥에서 제 모든 밀도를 지닌 채 타인의 손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을 어루만지는 타인의 손가락 아래에서 몸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입술에 닿는 순간 내 입술은 민감해지고, 반쯤 감긴 타인의 눈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확실성을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감긴 눈꺼풀에 그의 시선이 닿는다. 사랑은(…) 당신의 몸의 유토피아를 누그러뜨리고, 침묵시키고, 진정시키며, 상자처럼 감싸고, 닫고, 봉인한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그토록 좋아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나눌 때 몸이 바로 여기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 130p
불안한 사람들에게 신체적 접촉이 어렵다면 따스한 눈빛을 쏘라. 그리하면 그가 자신을 잃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자녀들의 버릇없음을 감사히 여기자.
각자의 역사를 만들어가려면 버릇없음이 있어야만 한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전수하려는 것은 폭력이다. 그들이 자기만의 자리를 창조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존중하자.
우리의 자리는 그 자체로 이러한 내적 운동들, 일시적 추동, 집착의 동요와 충격을 모두 담는 곳이다. 201p
외부의 영향을 받은 변화를 하는 카멜레온이 될 것인가? vs 자유자재로 색깔을 바꾸는 능동적 변화를 하는 문어가 될 것인가?
다양한 측면의 자리 이동으로 혼란스러울 때 빠르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나만의 기술을 연마하자. 때에 따라 그 기술도 변화해야 할 것이기에 그 기술도 진보시켜보자. 타인이 넘어지려고 할 때엔 부축해 주자. 그런 씨앗이 언젠가 나에게 뿌려질 것이다.
책이 좋아서 뭐라도 남기고 싶었음. 다소 민망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