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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양귀자 지음 / 쓰다 / 2020년 6월
평점 :
20대에 나는 박완서, 양귀자,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님의 책을 주로 읽었고, 깊은 감정의 동요가 힘들어서 도망갔던 책이 일본 소설들이었다. 양귀자의 <희망>은 27-8년 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엔 2권이고 양장으로 기억하고, 희망 여인숙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신기한 건 마지막에 형 도연의 행보는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고 선배 미라의 존재만 내 기억에 생생했다. 나는 그 존재가 책의 중간이나 중반 이후쯤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초반에 나오네? 🤪 사람의 기억이란 ..
억척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나성 여관으로 먹고사는 한 가족과 나성 여관의 손님들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잠옷 차림의 아버지와 여관이라는 특성상 쪽잠을 자는 어머니는 내실을 차지하고 있고, 예전처럼 여관에 손님이 가득하지 않은 덕분에? 도연, 수련, 우연은 뒷방을 한 칸씩 차지하고 지낸다.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도연은 운동권 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와 쌍벽을 이루는 어머니의 웬수가 됐고, 색 감각이 남다른 동생 눈에도 너무도 예쁜 수련은 그 엄청난 재능을 살려?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책의 화자인 우연인 이 집의 막내는 공부에 취미가 없는 삼수생 되시겠다.
먹고사는 일이 빡빡하던 시절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었다. 학생들이 점차 목소리를 내며 성장만이 아니라 사람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시절이었다. 당연히 허름한 여관의 손님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나성 여관을 집처럼 살고 있는 10호실 노인과 근처에 교회 건축을 위해 장기 숙박을 하러 온 9호실의 찌르레기 아저씨, 여관의 살림을 도와주는 뽕짝 아줌마와 함께 하기에 여전히 사람 냄새 물씬 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인 형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인가? 미라인가? 싶은 낯선 정체와 함께 지내는 형.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벌벌 떠는 저 존재는 누구일까?
이북 사투리를 10호실 노인은 딸이 보내주는 돈으로 숙식비를 해결하는 데 요즘 딸이 보내주는 봉투가 끊겼다. 삼수생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날 우연은 노인과 딸의 집을 동행하게 된다. 노인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딸의 집은 꽤 허름했고, 노인을 향한 딸의 시선엔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녀의 아들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그녀는 바짝 마른 몸에 삶의 여유라곤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교양인의 막일 체험! 인가? 싶은 교회 건축에 일용직 노동자로 지낸다는 찌르레기 아저씨는 형을 대신해 우연이의 곁을 차지하게 된 사람이다. 아저씨와 가까워지며 아저씨에 대해 알고 싶은 우연은 의도치 않게 아저씨의 글을 보게 된다. 지독히도 힘들었던 삶에 삶의 의미가 되어 나타난 여인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던 아저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는 한 사람이게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그 복수의 마음이 이해가 갔지만 아저씨를 그렇게 둘 수 없었던 우연은 부산으로 떠나는 아저씨를 따라가지만 중간에 잡혀 집으로 보내진다.
매일 조석간 신문을 몽땅 뒤지며 부산의 사건을 찾아보는 우연.
여관으로 찾아온 경찰.
찌르레기 아저씨가 아닌 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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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랑, 또 오빠의 친구들은 어디서 그런 용긱 날까? 왜 남들처럼 편한 세상을 살지 않을까?무슨 힘으로?” 130p
“이런 싸움에는 패배가 없는 법이야. 시작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승리했으니까.”205p
우리를 지배하는 저 아집들, 분노와 환상과 욕망과 절망 따위의 것들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분해되었는가를 나는 보았다. 분해되어 먼지만 남을 아집에 끌려다니는 것을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오직 내 앞길에만 성실하도록 자신을 부추겼다. 250p
언젠가 형이 그랬다. 아는 것은 곧 실천이라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생선 대가리라고. 형의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광활하다. 그런데 대체 형의 세상은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일까. 459p
살아있는 우리는, 너와 나 그리고 무두 다, 서로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야.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직시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삶을 지탱할 수 없어. 544p
주어진 행복에 감사함이 일상이 되어 더 큰 것을 바랐던 찌르레기 아저씨의 삶과, 예쁨의 유혹에 넘어간 수련의 삶은 너무 안타까워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연이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만 더 표현했더라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