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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른베
신유진 지음 / 시간의흐름 / 2025년 5월
평점 :
신유진 작가는 1984books 대표님의 누나이기도 하고,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이다. 아니 에르노 작품을 다수 번역하였고, 그녀의 노벨상을 점치기도 했었다. 그녀의 에세이 글을 좋아한다. 이 책은 신유진 작가가 자신의 문학 뿌리가 엄마에게 나왔음을 살펴보는 <사랑을 연습한 시간>을 읽었기에, 책을 펼치면 보이는 ❛전혜린으로부터❜를 보자마자 대출했다.
<사랑을 연습한 시간>에서 / 리뷰 걸렀는데;;;;
그녀와 그녀의 엄마가 전혜린의 책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다는 것. 그녀 엄마가 있는 공간에 아니 에르노의 책이 놓여 있었다는 것(아마도 원서였을 듯/ 어머니 읽지 못하지만 디피용으로 들고 계셨을 것으로 추측되지만)이 너무도 신기하게 여겨졌고, 그런 문학 뿌리에 질투를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엠뽕님께서 이 책을 톱10 중 하나로 올리신 것을 보고,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 빌리길 잘했다는 나 혼자만의 칭찬을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건 그냥 그리움이었던 것 같아요. 조금 이상한 말이긴 한데…….
그런 마음, 나도 알아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 혹은 되어본 적 없는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
페른베, 그걸 독일어로 페른베라고 해요.
먼 곳을 향한 동경 같은 건데요, 전혜린은 먼 데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번역했어요. 여기 아닌 다른 곳을 향한 마음 같아요. 만날 수 없어도, 갈 수 없어도 나도 모르게 향하는 마음 같기도 하고. 나는 그런 마음을 나한테 느껴요. 여기 아닌 어딘가에 진짜 내가 있을 것만 같거든요. 그런 나를 그리워하고 있고. 99p
6년간 사귄 남자 친구와 이별, 사랑하지만 힘든 엄마와 떨어지는 방법은 직업을 핑계로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최고다. 살던 도시보다 아주 한산한 지역의 마음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희수. 일시적 고통을 덜어주는 이름 없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인 상담원은 요청자의 전체 서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파편적으로 나열된 단어를 엮어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마치 단편 소설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불행을 받아 적는 일을 하는 사람.
그런 희수의 눈에 들어온 초대문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
쓸수록 선명해지는 세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극장이 있던 자리에 요양병원이 생길 만큼 젊은 인력이 거의 없는 이 도시에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젊은 친구들이 원도심에 한 켠을 활용하고 있었다. 1층은 이곳을 지킨다는 사명을 갖고 무려 20년 그 자리를 지키는 글방으로 올라가기 전 가교 역할을 하는 카페가, 3층엔 글방이 있었다.
교환 글쓰기의 짝꿍은 이 글방을 이끌고 있는 ‘니나’와 짝이 되었다. 전혜린이 번역한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이름을 쓰는 니나.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은 계속 미완성이었다.
늘 먼 거리 자신의 집까지 꼭 오라고 했던 남자친구. 언젠가 꼭 뮌헨을 여행하자고 함께 모은 여행 통장은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돈을 아낀다고 에너지를 아낀다고 늘 집에서만 지냈던 둘의 관계에서 마지막에 떠난 해남 여행도 결국 중간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그들의 인연은 이미 정해졌던 것일까?
혼자 자신을 키워낸 일이 너무도 대단한 일이기에 언제나 자신의 이런 애씀을 피력하는 엄마와의 관계도 울컥 울컥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누르기에 바쁜 동이 씨와의 관계도 이대로 괜찮을까? 어떤 생명도 동이 씨의 손에서 오래가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잘 키워낸 생명이 나라는 일에 그저 감사하는 것이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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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은 글자가 아니라 음표로 써야 한다는 것을 안다. 55p
어떤 날은 뭐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요. 이 거리도, 나도 다 가짜 같아요. 진짜는 과거에, 저 벽 속에 있고요. 나는요, 삶이 비처럼 내릴 때 그 빗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게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인지, 한때 나였던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날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저 벽에 적힌 이름 같아요. 당신이 보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73p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78p
전혜린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것이 궁금했다. 개인의 기억, 혼란, 감정, 그런 것들을 타인에게 건네는 이유를. 나의 고독이 당신과 나눠도 괜찮을만큼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동시에 누군가 봐주길 바랐을 것이다. 보여주기 싫으면서 봉주고 싶고, 보고 싶지 않으면서 보고 싶은 사람의 이 이중적인 마음을 알아채고 나면 뭐가 달라질까. 나에게서 가장 먼 나에 닿게 되면 그다음은? 원소로의 환원인가? 128p
모녀의 관계에 너무 몰입했다. ㅠ 강희 님 선물로 <생의 한가운데>를 읽어서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