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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리커버) ㅣ 문학동네 숏클래식 리커버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9월
평점 :
절판
1960년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 프라하가 배경인 작품이다. 흐라발은 42년 동안 체코를 지배한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아래 글을 쓴, 삶이 파란만장했던 작가다.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면, 흐라발은 체코를 떠나지 않고 힘겹게 체코어로 작품을 썼던 사람이다.
35년째 지하 공간에서 책과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한탸는 단순한 작업을 단순하게 하지 않는다. 책을 펼쳐보고, 살피고, 그 책에서 많은 지식들을 흡수한다. 교양을 쌓아가며 하는 단순노동. 플러스 맥주는 그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소장에게 욕을 먹지만 한탸는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책이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모를 삶을 살아간다.
지하엔 책을 갉아먹으며 싸움을 일삼는 쥐들이 산다. 어찌나 싸워대는지 쥐들을 꼭 싸우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런 시끄러운 환경 속에 그가 하는 일은 단순히 압축기의 붉은 색 버튼과 녹색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그의 삶이 지루하다 느껴지겠지만, 자신의 일을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다 여기며 살아가는 꽤 지적 쾌감을 누리기도 하며, 복권 당첨된 돈을 여자와 여행 가서 한 방에 쓰기도 하고, 이름 모를 집시와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폐지 압축하는 일로 돌아간다.
영원할 거라 여겼던 일은 거대한 새 기계와 컨베이어 작업으로 사라진다. 새로운 작업장에서 백지를 꾸리는 일을 할 것인가? 책과 함께하는 운명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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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22p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소름 끼치는 일은 굳고 경직되어 빈사 상태에 놓이는 것인 반면, 개인을 비롯한 인간 사회가 투쟁을 통해 젊어지고 삶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단 한 가지 기뻐할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45p
자연스러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는 순간, 그때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93p